[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랜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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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경제적 이유로 조성 열기 뜨겁지만
공유 역할 할 때 본래 의미 발현돼
북항재개발에서 그 가치 살려 내야

연말이다. 그것도 코로나19에 저당 잡혔던 일상이 3여 년 만에 풀린 연말이다. 매년 이맘때면 광복로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와 형형색색의 조명이 더해져 온통 ‘빛’ 천국이다. 거리에 선 사람들 모습마저 덩달아 빛이 된다. 올해는 아직 빛을 밝히지 못했다.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 축제’를 주관하던 단체의 횡령 문제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대표 랜드마크로 활용하기 위해 쏟는 투자와 노력을 보니 늦어지는 광복로 크리스마스트리 축제가 안타깝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센터 트리,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 근처의 트리는 물론 말레이시아나 홍콩까지 가지 않더라도 제주도에서도 미디어 파사드와 크리스마스트리에 점등을 시작해 크리스마스 명소로서 랜드마크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나마 원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연말 명소가 횡령으로 얼룩져 사업비가 줄고 개막이 늦어진다 하니 경쟁력을 쌓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건 금방이다.

파리 에펠탑, 뉴욕 자유의 여신상, 인도 타지마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 직접 가보지 않아도 도시나 나라를 들으면 떠오르는 랜드마크는 관광객을 모으고 경제적 효과로 이어지기에 세계 각국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랜드마크를 만들자고 한다. 심지어는 규모가 큰 고층 아파트를 랜드마크라 칭하면서 지역 내 최고층 랜드마크 단지를 분양하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아무렇게나 쓰이고 있는 랜드마크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랜드마크는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본래의 의미는 탐험가나 여행자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특정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든 표식인데 지금은 그 의미가 확대되어 건물, 조형물, 문화재, 지형 등과 같이 어떤 곳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의미를 가진다.

미국 도시 계획가이자 이론가인 케빈 린치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 통로(Path), 가장자리(Edge), 결절점(Node), 지구(District), 지표물(Landmark)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이들 요소가 잘 갖추어져야 인상적인 도시, 길을 찾기 쉬운 도시, 즉 선명한 도시가 된다 했다.

여기서 지표물(Landmark)은 말 그대로 랜드마크다. 단순히 높고 크다고 해서 다 랜드마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가 점점 더 높은 건물을 만들고 거기서 살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는 그곳은 공공이 향유할 수 있는 대표성보다는 개인의 소유욕을 부추긴다. 개방적이기보다는 폐쇄적이다.

랜드마크는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별한 장소에서 개인의 경험과 집단의 기억이 공유되어 도시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은 단시일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랜드마크는 공공의 장소, 공유의 역할을 톡톡히 할 때 그 의미가 발현된다.

건축물은 개인의 영역이지만 여러 건축물이 모이면 공공적 환경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윤리성’을 내포한다. 공공의 개념이 건축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건 18세기 유럽에서였다. 공공건축은 18세기 이후 시민계급으로 대표되는 대중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공론장이 형성되면서 등장한 건축 개념이다. 당시 왕정 건축아카데미와 궁정 안에서만 이루어지던 폐쇄적인 논의 방식을 공공건축과 공공 공간규범에 대한 논쟁으로 공론화시켰다. 전문가와 지식인, 대중이 미적 규정에 대한 토론을 활발히 전개해 공공건축 양식이 결정되었다. 이들은 건축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신념을 공유했다.

부산시가 도시 브랜드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홍보와 부산의 도시 브랜드 제고를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랜드마크를 짓고 만들겠다고 한다. 지난 4일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지 내 해양문화지구 랜드마크 부지 개발 민간사업자 공모 사전참가신청’에 국내외 시행사 10개 업체가 신청을 완료했다고 한다. BPA는 ‘공공성은 살리면서 부산의 상징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하는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라 한다. 부산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유엔묘지, 용두산타워, 민주공원의 충혼탑 등과 더불어 시민과 방문객이 역사적 기억을 함께할 수 있는 랜드마크가 들어섰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압축 근대화 과정을 겪은 우리나라에서 도시와 건축을 지배한 논리는 경제적 기능주의였다. 그러다 보니 도시화 과정에서 난개발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 같은 북항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면 변명거리는 별로 없다. 우리가 북항재개발 랜드마크 부지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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