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나잇값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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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다. 긴 가래떡으로 만드는 떡국에는 무병장수의 뜻이 담겼다. 중국과 일본에서 생일이나 잔치 때 국수를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떡국의 떡은 원래 수직으로 잘라 동전 모양이었다고 한다. 동그란 떡을 먹고 부자가 되라는 뜻이 담겼다. 다들 설날에 떡국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한다. 나이 먹는 게 싫어서 떡국 먹기를 두려워했는데, 재복이 드는 줄 알았으면 두어 그릇쯤 먹을 걸 그랬다. 아무튼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이를 깎아 준다니 올 설에는 떡국을 마음껏 먹어도 되겠다.

그동안 우리만 나이 계산 방식이 3개나 되면서 헷갈렸던 게 사실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세는 나이’는 출생일부터 한 살로 친다.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만 나이’는 출생일을 기점으로 1년이 됐을 때 비로소 한 살이 된다. ‘연 나이’는 생일과는 무관하게 단순히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서 계산한다. 같은 사람의 나이가 3개나 되면서 혼선이 잦자 통일하자는 주장이 예전부터 나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만 나이 통일의 일등 공신은 코로나19였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두고 나이 논란이 일자 윤석열 정부는 출범 때부터 만 나이 통일을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오는 6월 28일부터 최대 두 살까지 젊어지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만 나이로 통일된 후에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법률과 행정에 쓰이는 나이 계산법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적용해 오던 만 나이를 재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 나이 개정으로 인해 ‘정년이 연장된다’거나 ‘국민연금 수령 개시 시점이 늦어진다’, 혹은 ‘65세 이상 어르신의 교통비 지원 개시가 늦어진다’는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나이는 여전히 너무나 중요하다. 낯선 이와 시비가 붙으면 상대방의 완력이나 무기 소지, 무술 수련 여부가 아니라 나이를 확인하려 든다.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면 당장 “나이도 어린 놈”이란 소리가 나간다. 상대도 가만히 있지 않으니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모를” 같은 험한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조선 시대에도 ‘상팔하팔’이라고 해서 위아래 8살 차이까지 서로 친구를 했는데 말이다. ‘나잇값’은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평균 수명이 늘며 자리 욕심을 내는 사람은 많아도, 나잇값을 하는 어른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람이 나잇값과 밥값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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