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놓친 부산, 제작 인프라 갖춰야 진짜 영화도시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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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콘텐츠 도시] (하) 부산이 나아갈 길은

촬영 스튜디오 달랑 두 동 뿐
영화 사업체 수 전국 2.7% 불과
인프라 부족하니 종사자도 적어
관련 산업 육성 나선 대전과 대비
세트·스튜디오 복합단지 조성 등
부산도 인력 ‘선순환 구조’ 시급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촬영을 문의했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 컷. 당시 두 동뿐인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예약이 모두 찬 탓에 제작진은 대전의 스튜디오 큐브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넷플릭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촬영을 문의했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 컷. 당시 두 동뿐인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예약이 모두 찬 탓에 제작진은 대전의 스튜디오 큐브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넷플릭스

부산이 될 수 있었다. 세계를 뒤흔든 ‘오징어 게임’의 촬영 도시 말이다.

2019년 12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오징어 게임' 촬영 문의가 왔지만, 두 동이 전부인 이곳의 예약은 모두 찬 상태였다. 결국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제작진은 대전 ‘스튜디오 큐브’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 주인공 이정재는 ‘2030 부산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1호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부산에서 영화 ‘헌트’를 찍은 그가 부산에서 ‘오징어 게임’까지 촬영했다면 어땠을까. 전 세계에 ‘콘텐츠 중심 도시’라는 부산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었을 테다.

부산은 국제영화제(BIFF)가 열리는 화려한 ‘영화·영상도시’처럼 보여도 산업적 측면에서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찍은 대형 작품 촬영도 사실상 ‘반쪽’에 그치기도 했다. 부산이 등장하는 ‘D.P.’ 시즌2도 스튜디오 촬영을 부산에서 하지 못했다. 제작진은 지난해 2월 예약 일정 탓에 사용이 어렵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애플TV+ ‘파친코’는 영도 바다 등 주요 배경을 특수 장비로 스캔한 후 캐나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2020년 8월 사용을 문의했던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수중 촬영이 불가하고 규모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파친코’ 시즌2 촬영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열악한 영화·영상 산업


지난달 21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A동과 B동 모두 OTT 시리즈물 ‘유쾌한 왕따’ 세트장으로 꾸며진 상태였다. 대형 콘텐츠 촬영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씁쓸한 이면이 있다. 부산 스튜디오는 이곳이 유일해 스튜디오 두 동에서 촬영이 이뤄지면 다른 작품을 찍기 어렵다. 부산영상위 김윤재 스튜디오 운영팀장은 “‘유쾌한 왕따’는 2022년 6월부터 두 동 모두를 사용한 작품”이라며 “2023년 상반기까지 예약이 찬 상태”라고 설명했다.

부산은 ‘영화·영상도시’라 불려도 정작 영화·영상산업의 현실은 열악하다. 문화체육관광부 ‘2021년 콘텐츠 산업 통계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영화 관련 사업체는 전국 916곳 중 부산엔 25곳만 있었다. 서울 561곳과 경기도 128곳보다 수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 특히 부산 영화 기획·제작 업체는 4곳에 불과해 서울 251개, 경기도 33개보다 턱없이 적었다. 부산 영화 산업 종사자도 전체 2.6%인 269명에 그쳤다. 2017년 5.8%보다 절반 이상 비율이 줄었다. 방송 산업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전국 방송 산업 관련 사업체 1055곳 중 부산에는 33곳에 불과했다.


‘비장의 카드’ 준비해야


CJ ENM은 경기도 파주 탄현면 일대 연 면적 3만 7407㎡(약 1만1315평) 부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센터’를 세웠다. 사진은 스튜디오 센터 내 VFX 스튜디오. CJ ENM CJ ENM은 경기도 파주 탄현면 일대 연 면적 3만 7407㎡(약 1만1315평) 부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센터’를 세웠다. 사진은 스튜디오 센터 내 VFX 스튜디오. CJ ENM

인천에 위치한 넥스트스튜디오스. 넥스트스튜디오스 제공 인천에 위치한 넥스트스튜디오스. 넥스트스튜디오스 제공

부산에 영화·영상 사업체와 종사자가 ‘거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에 해당 분야 산업이 발달한 수도권과 거리도 멀고 인프라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자체는 스튜디오 집적 단지와 특수 영상 등 관련 산업 육성에도 발 빠르게 나섰지만, 부산은 A동과 B동을 합쳐 750평인 스튜디오만 있는 상황이다.

대전은 ‘스튜디오 큐브’ 등에 1500평, 1000평, 600평, 340평 등 다양한 규모의 스튜디오를 갖췄다. 수중 촬영이 가능한 ‘아쿠아 스튜디오’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는 21만 평 규모 ‘방송영상밸리’ 등을 아쿠아 스튜디오 등과 연계할 계획이다. ‘넥스트스튜디오스’가 들어선 인천은 영상복합단지 조성 사업 등에 나섰다. 이진영 인천시 문화체육관광국 주무관은 “로케이션을 넘어 콘텐츠 산업을 품을 사업들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CJ ENM 스튜디오 월드 전경. CJ ENM 경기도 파주에 있는 CJ ENM 스튜디오 월드 전경. CJ ENM
‘오징어 게임’ 촬영을 진행한 대전 스튜디오 큐브 내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촬영을 진행한 대전 스튜디오 큐브 내부. 넷플릭스

업계에서는 부산이 ‘스튜디오 집적 단지’ 또는 ‘특화 세트·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콘텐츠 IP 마켓’을 확장해 영화 비즈니스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경쟁력을 갖춘 스튜디오 등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작한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인천 넥스트스튜디오스가 굉장히 잘 지어졌다”며 “부산은 아쿠아 세트나 LED 스튜디오 등 특수 세트를 모아 놓거나 평소 촬영이 어려운 대규모 병원이나 경찰서, 구치소 세트 등을 지어 놓으면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를 고려해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영웅’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은 “사극은 제작 수요보다 촬영지가 제한된 상태라 시대별 거리 등으로 특색을 살리면 수요가 넘쳐날 거라 본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제작자는 “수도권은 당일 촬영으로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어 부산은 특수 분야나 규모 면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고민 필요한 선순환 구조


부산에서 촬영을 진행한 영화 ‘발신제한’. 부산영상위원회 부산에서 촬영을 진행한 영화 ‘발신제한’. 부산영상위원회

특히 윤제균 감독은 “영화 세트와 스튜디오 복합단지를 조성해야 영화 관계자와 인력도 흡수할 수 있다”고 했다. 부산영상위 ‘2019년도 부산 영화·영상 산업 현황 조사’에 따르면 부산 13개 종합대, 4개 전문대, 8개 대학원에서 관련 학과 졸업생이 한 해 1739명 배출됐다. 2021년 부산 영화 산업 종사자가 269명인 걸 고려하면 그동안 부산에서 영화·영상교육을 받은 많은 청년이 수도권 등으로 이동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산이 영화 산업을 키우려면 영화·영상 인력 유출을 방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산은 영화 제작 과정 중 대부분이 로케이션 ‘촬영 단계’에 머물고, 촬영 전후 공정은 수도권에서 이뤄진다. 부산 영화·영상 산업에 종사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지 못해 산업 불균형이 계속되는 셈이다.

대전 콘텐츠진흥원 산하 스튜디오 큐브 전경. 콘진원 대전 콘텐츠진흥원 산하 스튜디오 큐브 전경. 콘진원

부산도 시대 변화에 발맞춰 다른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 대전은 자체 인력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김미라 대전시 문화콘텐츠과장은 “특수 영상 등에 초점을 맞춘 대전은 자체 인력 확보를 특화 사업 프로젝트에 포함해 예산을 편성했다”고 했다.

영화프로듀서조합 최정화 PD는 “부산이 지방분권화 시대에 맞춰 영화 콘텐츠 기관을 데려갔으면 적극적으로 산업 육성에 힘써야 한다”며 “제작 인프라를 잘 만들고 인력을 확보하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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