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100만 원짜리 교복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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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우리나라 최초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문을 열자 사람들은 놀랐다.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다니는데, 치마와 저고리를 입긴 입었으나 위아래가 온통 빨간색이었던 게다. 보는 사람은 뜨악했고 입는 학생은 민망했다. 당시 이화학당은 값싼 러시아제 목면을 학교에 상주하던 침모에게 맡겨 교복을 짓게 했다. 하필 빨간색이었을까.

1907년 개교한 숙명여학교도 교복을 입혔다. 처음엔 원피스에 모자와 구두를 착용하는 유럽 스타일이었다. 한데, 짙붉은 자줏빛이었다. 숙명여학교는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아 식민통치에 들어가자 항의하는 뜻으로 한복으로 교복을 교체했는데, 이때도 자줏빛 치마를 사용했다.

원래 우리 풍습에 치마와 저고리는 대체로 그 색을 달리했고, 색이라고 해 봤자 희거나 검었을 뿐이다. 그런데 온통 붉은색이라니! 지긋한 어른들은 혀를 찼고, 학생들은 부끄러워했다. 등교할 때 교복을 책보에 싸 가지고 와서 교문 앞에서 갈아입는 풍경이 벌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흔치 않던 붉은색 계통의 교복을 고집했던 것이다. 신학문을 배우는 신여성으로서 ‘과거와는 다르다’는 자부심을 심어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실제로 당사자의 민망함과는 별개로 당시 교복 입은 여학생은 그 자체로 대중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교복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통제와 획일화가 강조되면서 교복은 자부심과 선망의 대상에서 억압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이는 해방 이후 군사정권 때까지 비슷하게 이어지다, 나라 전반에 자유와 개방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결국 1983년 새 학기부터 교복자율화가 전격 실시됐다. 그 뒤에도 “입어야 된다” “안 된다” 논란이 거듭되다 지금은 학교장 재량에 맡기는 쪽으로 제도가 시행 중이다. 하지만 학생의 선택권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소위 ‘명문’을 내세우는 학교일수록 교복을 강제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최근 부산의 한 사립초등학교가 새 학기를 앞두고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교복 구입을 추진해 입방아에 올랐다. 고급 원단을 사용해 유명 공방에서 개인 맞춤형으로 구입하려다 보니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통상 초등학교 겨울 교복비가 30만 원 아래임을 고려하면 놀랄 수밖에 없는 금액이다. 아무리 사립이라 해도 상식 선에서 옳은 일인가 싶어 당혹스럽다. 학생에겐 자부심을, 보는 이에겐 동경심을 갖게 하는 ‘명문’이라는 타이틀이 돈으로 보장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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