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살기 좋은 부산, 떠나는 부산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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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경 경제부장

악순환에 빠진 부산 산업과 교육
전통산업 몰락… 청년 유출 가속
상당수 미달 대학 ‘벚꽃엔딩’ 위기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주요 과제
금양 이차전지 공장 건립과 같은
긴밀한 지산학 협력으로 혁신해야

아이들이 대학 갈 나이가 되니 부산의 교육과 대학 현실이 새삼 와 닿는다. 과거 이류, 삼류로 취급받던 서울 몇몇 대학들의 입시 수시·정시 합격선을 보고 깜짝 놀랐고, 이름도 낯선 서울과 수도권 대학이 부산대와 비슷한 수준인 것에 더 놀랐다. 여기다 요즘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선호한다. 성적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의 가능성만 있다면 기를 쓰고 서울로 가고 싶어 한다.


생활 인프라를 갖춘 대도시이면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그래도 부산만큼 살기 좋은 곳 있나”라고 말 해왔던 것은 기성세대의 자위일 뿐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지방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기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또 지역의 탄탄한 중소기업에 들어가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부산은 제조업 기반의 전통산업이 몰락했고, 새로운 돌파구는 여전히 열지 못했다. 부산에 삶의 터전을 이미 마련한 어른들은 만족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일자리가 없는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경쟁하고 싶어 한다. 지방대를 나와선 수도권 대학 출신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지방 학생들의 의·약대와 서울 명문대 진학은 갈수록 바늘구멍이 되고 있다. 이들 인기 대학과 학과엔 갈수록 서울 강남 3구를 위시한 수도권 학생들의 몫이 계속 커진다.

무한경쟁 속에 지방의 산업과 교육은 맥을 못 추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 부산 청년들은 수도권 등 타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신산업에 뛰어든 기업들은 인재 확보가 어렵다며 부산을 떠나고 싶어한다. 부산의 15개 대학 중에 무려 10곳은 올해 정시 경쟁률이 3 대 1 미만으로 사실상 미달이다. 인구 감소로 대학 구조조정은 이제 필연적이긴 하나,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벚꽃 엔딩’ 이 눈앞에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지긋지긋하게 강조돼 온 말이지만, 정부 수립 이후 지속돼 온 수도권 일극주의를 멈추지 않고는 딱히 해답이 안 보인다. 기업과 자본, 인력이 넘쳐나는 수도권과의 경쟁에 이미 부산을 비롯한 지방은 백기를 들었다. 이제 제발 살려달라는 아우성뿐이다. 그러나 중앙의 권한과 자원을 지방으로 넘기는 지방분권은 여전히 요원하다.

지방이 바라는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아직 갈 길이 멀다.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 부산에 금융·해양 공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청년들이 선망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다. 부산 최고의 직장이 지역마다 다 있는 ‘지방은행’이란 자조 섞인 푸념은 이제 듣지 않아도 된다. 또 부산대가 그나마 이 정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 이들 공기업의 지역인재 할당제 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부산이 기대했던 금융중심지 육성은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난 10여 년의 세월동안 명확해졌다. 보다 많은 금융기관의 집적으로 시너지를 내야 금융중심지로서의 성장은 물론 신산업 투자 확대로 부울경 산업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부산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가덕신공항 건설과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다. 육해공 물류 허브를 구축하고 엑스포를 통해 다양한 기반시설을 조성하면 물류와 산업, 금융, 문화, 관광이 결합한 글로벌 허브도시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 두 개의 중요한 과제를 빈틈없이 준비해야겠지만, 다급한 부산의 현실을 보면 2030년까지 이것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의 일자리 창출과 경쟁력 있는 대학 만들기에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부산 기업 (주)금양이 미래 핵심산업으로 주목받는 이차전지 생산공장을 기장군에 짓기로 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금양은 국내에서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세 번째로 ‘2170 원통형 배터리’를 자체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해 다른 지역을 알아보기도 했다. 이에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땅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기장에 둥지를 틀게 됐다. 또 금양은 부경대 공대 인력 양성 지원을 해 왔는데, 최근 상위권 학생 상당수가 금양에 입사했다. 금양은 2026년까지 8000억 원을 투자해 공장을 조성할 계획으로, 이를 통해 연구·관리·생산 분야 일자리 1000여 개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의 혁신과 지자체·대학의 적극적인 의지가 이뤄낸 ‘지산학’ 합작품이다.

중앙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내부의 변화와 혁신 없이 부산이 새롭게 나아갈 수는 없다. 지자체와 기업, 대학 모두 경쟁력 강화와 긴밀한 협업으로 제2, 제3의 금양 사례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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