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닮은 목화와 딸 ‘세대의 이어짐’ 그리다 [전시를 듣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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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 회화’ 강강훈 개인전
29일까지 조현화랑 해운대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 연결
마른 목화 가지는 부모 상징
“빛의 설정·추상성 계속 연구”

강강훈 'cotton'. 강 작가가 아들을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앞선 세대와 다음 세대가 마주보는 느낌을 전달한다. 조현화랑 제공 강강훈 'cotton'. 강 작가가 아들을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앞선 세대와 다음 세대가 마주보는 느낌을 전달한다. 조현화랑 제공

‘캔버스에 유화물감.’ 작품 정보를 다시 확인할 정도로 강강훈 작가의 그림은 사실적이다. 피부 결, 솜털까지 사진처럼 생생한 인물 묘사로 극사실 회화의 계보를 잇는 강 작가는 현재 부산에서 작업하고 있다. 강강훈 개인전이 부산 해운대구 중동 조현화랑 해운대에서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경남 진주 출신인 강 작가는 경희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러시아 사실주의 거장인 일리야 레핀의 화집을 처음 대했을 때였죠.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그릴 수 있구나!’ 충격을 받았어요.” 사실주의 회화에 빠진 강 작가는 관련 자료나 전시를 찾아다녔다. 성실한 미대생이 한국 대표 구상작가의 전시 소식이 들리면 수업도 빼먹고 달려갔다. “나도 할 수 있을까 궁금하고, 정말 리얼하게 보여지는 지점까지 그리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끓어올랐어요.” 강 작가는 욕구가 재능을 만들고, 지금까지 자신이 극사실 회화 작업을 하는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작품 '해는 진다' 앞에 선 강강훈 작가. 오금아 기자 작품 '해는 진다' 앞에 선 강강훈 작가. 오금아 기자
강강훈 'Modern Boy-modern war'. 작가 제공 강강훈 'Modern Boy-modern war'. 작가 제공

성인 남성을 모델로 한 ‘모던보이’ 연작으로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낸 강 작가는 2019년 딸을 모델로 한 그림을 공개했다. “아이가 저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직접 모델로 나서지는 않아도 아이의 모습에 저를 투영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이번 전시에서는 인물과 색 중심이었던 그림에 사물이 더해져 조화를 이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도 안 돼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목화는 심상적으로 떠올랐어요. 실제 관찰하니 목화꽃은 하얗게 센 머리카락, 꽃받침은 쪼글쪼글한 손을 닮았더군요.” 목화 자체가 어머니의 모습이면서, 꽃을 받치고 있는 가지의 말라비틀어진 모습이 부모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목화꽃의 솜은 너무 하얗고 온전했다.

강 작가는 목화가 세상을 떠난 세대, 현재 자신의 세대, 다음 세대를 통틀어서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의 아이들이 목화와 함께 있는 모습 사진을 찍고, 이를 그림에 옮겼다. “있는 현실을 온전하게 작품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제 눈에는 빛의 설정이 조금만 바뀌어도 모든 것이 다 바뀌는 것 같더라고요.”

강 작가의 딸이 머리에 목화 가지를 올린 모습을 그린 대표작 제목은 ‘해는 진다’이다. 강 작가는 ‘심상적 제목’으로 지은 첫 작품이라고 밝혔다. 해는 진다는 말은 ‘해는 뜬다’, ‘해는 결국 진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또한 이 그림은 강 작가가 빛의 설정에 처음 도전한 작품이기도 하다. “조명을 받으면 빛이 위에만 비치게, 얼굴 아래쪽이 어둡게 보이도록 설정했어요.”

강강훈 '해는 진다'. 강 작가가 심상적 제목으로 지은 첫 작품이면서 빛 설정에 도전한 작품이다. 조현화랑 제공 강강훈 '해는 진다'. 강 작가가 심상적 제목으로 지은 첫 작품이면서 빛 설정에 도전한 작품이다. 조현화랑 제공

그림 속 목화는 어머니로 대표되는 전 세대, 아이는 다음 세대를 의미한다. “두 세대의 간극을 이어주는 저는 색으로, 뒤로 빠져 있어요. 우리는 무엇으로 이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어떤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푸른색과 초록색이 맞물린 배경 색은 ‘가족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표현한다. “손이 꽁꽁 어는 한기는 아니고, 어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어스름한 새벽 같은 느낌이죠.” 강 작가는 검은 배경에 목화만 그린 작품에 대해서는 어머니 꿈을 꾸거나 어머니 생각에 뒤척인 밤을 그린 것이라고 전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빛답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는 목화를 비추는 달빛이 자신의 가족을 비추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강강훈 작가의 전시작. 오금아 기자 강강훈 작가의 전시작. 오금아 기자
강강훈 개인전 전시장 전경. 조현화랑 제공 강강훈 개인전 전시장 전경. 조현화랑 제공

강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며 ‘심상이 파도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인물만 그릴 때는 사진 같이 디테일을 다 살렸는데, 이번에는 일부만 디테일을 살리고 추상적으로 터치를 한 부분이 있어요.” 강 작가는 이번 목화 작업으로 전환기를 맞은 것 같다고 했다. “운명적으로 주어진 소재이니 계속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빛의 설정이나 조명, 추상성에 대해서는 더 연구하고 그려보려고 해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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