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구인난 고리, 지산학 ‘맞춤형 인재’로 풀어라 [이젠 지방대학 시대]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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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지방대학 시대] ㉻ 일자리 토양

부산 대졸자 취업률 전국 최저
기업 미충원율 평균보다 높아
좋은 일자리 찾아 탈부산 가속
정보 없어 지역 기업은 ‘외면’
홍보·취업 인센티브 강화 필요
공공기관 이전 겨냥 인재 키워야

지역 대학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의 ‘일자리 토양’ 만들기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부경대 ‘2022 PKNU 진로·취업박람회’ 모습. 부산일보DB 지역 대학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의 ‘일자리 토양’ 만들기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부경대 ‘2022 PKNU 진로·취업박람회’ 모습. 부산일보DB

#사례 1. 부산의 한 4년제 대학 공과대를 졸업한 김 모(27) 씨는 2년째 취업을 하지 않았다. 서울이나 수원 등의 대기업 반도체 부서 관리직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높은 학점 덕에 대학 취업센터 등에서 부산의 중소기업 일자리를 소개하는 전화가 자주 걸려 오지만, 여기엔 일절 응시하지 않는다. 김 씨가 기대하는 임금보다 회사에서 제시하는 임금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김 씨는 “취업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처우를 받고 살기 좋은 여건이 보장되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 부산 지역 기업에는 지원서를 넣지 않는다”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역을 떠나야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사례 2. 부산의 한 조선기자재 B 기업은 2년째 채용 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다. 대기업 1차 밴드여서 연봉이 3500만 원 상당이지만, 채용 공고에도 지원자가 없었다. 기업 대표 박 모(54) 씨는 “학생들은 부산에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정작 기업들은 구인난을 겪는 모순적인 상황이다”고 말했다.

대학이 지역 인재를 양성하고 인재가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는 ‘선순환’은 부산에서는 수년째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 됐다. 질 좋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 대학 인재는 부산을 떠나고 남은 인재의 시야에는 부산에 질 좋은 일자리가 보이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 대학이 계묘년에 재도약하기 위해 지역 대학과 기업의 ‘일자리 토양’ 만들기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순의 악순환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달 26일 공개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지역 대학(원) 졸업생 취업률은 62.9%였다.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최하위였다. 전국 평균 취업률인 67.7%보다 4.8%P(포인트)나 낮았다. 17개 시·도별로 보면 부산(62.9%)은 59.6%를 기록한 지난해에 이어 취업률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하지만 부산 기업의 사정은 취업률 꼴찌와는 다르다. 부산 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린다. 부산시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부산지역 기업의 구인 미충원 인원(구인 인원에서 실제 채용 인원을 뺀 수치)은 4835명, 미충원율은 12%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 미충원율인 11.2%보다 높았으며, 특별시·광역시 가운데 부산보다 미충원율이 높은 지역은 광주(12.4%) 외에는 없었다. 가장 낮은 울산은 미충원율이 5.4%에 불과했다. 부산 지역 대학에 다닌 학생들의 취업률도 낮고 부산 지역 기업은 채용 난에 시달리는 악순환인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되자 취업준비생의 이탈도 눈에 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청년층 지역이동의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부산에서 첫 직장을 갖는 이들의 비율은 58.6%에 불과하다. 인접한 경남(14.3%)으로의 이동이 가장 많았지만 서울(10.9%), 경기(4.9%)로의 전출도 상당했다. 부산 기업에 미충원된 인재들은 대부분 부산을 떠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산에서 첫 직장을 구직한 지역 대학생들마저 일을 익힌 뒤 부산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현실이다.

부산의 한 국립대 공과대 교수는 “학생들은 석·박사 과정을 준비하지 않는 이상 수도권의 기업이나 연구 기관을 목표로 잡고 있어, 지역의 건실한 하청 업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며 “대기업 없는 부산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부산의 대학에서 공부할 이유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맞춤형 인재 키우고 기업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지자체와 산업계에서는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고 대학은 산업 생태계에 맞는 맞춤형 인재를 타겟팅해서 길러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이 특정 목표 없이 졸업장만 학생에게 쥐여 주고 방관하는 시대를 넘어 입학 후 4~5년 뒤 어떤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을지의 그림을 입학 때부터 함께 그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은 대규모 공공기관 이전이 진행되고 있고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금융단지도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전 공공기관은 혁신도시법에 따라 신규 직원 30%를 의무적으로 지역 인재로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 지역 인재 전형은 일부 지역 국립 대학의 독차지가 되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들 공공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준비된 인재가 현실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이전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역 인재 채용이라는 운동장이 열렸는데 막상 선수로 참가하는 학생의 대학은 편중돼 있거나 역량을 갖춘 학생은 매우 제한적이다”며 “왜 이전 공공기관이 지역 인재를 많이 뽑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 이전에 지역, 학교 차원에서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맞는 인재를 맞춤형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의 선호가 떨어지는 부산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우수 지역 인재 유치를 돕는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부산상공회의소, 부산시 등 관계 기관에서 기업이 학생들과 양질의 기업을 소개하고 지역 기업에 취직하는 학생에게 실질적인 지원책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김덕열 부산청년정책연구원 이사장은 “부산의 기업 중에도 건실하고 좋은 기업이 많은데 기업 홍보나 정보 제공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며 “학생 입장에서 지역에도 좋은 회사가 있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정책적 홍보,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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