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도민중심의 경남도정… 대권과 멀어져야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역대 경남도지사 대권 위해 중도사퇴 빈발
행정공백·정책 연속성 훼손 등 부작용 속출
박완수 도지사 “도정 최선 마지막 공직봉사”
‘활기찬 경남·행복한 도민’ 구호 약속 지켜야

‘도민과 함께 경남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겠습니다.’

민선 8기 박완수 경남도지사의 올해 신년사 제목이다. 그는 취임 6개월을 넘긴 상황에서 ‘도민 중심의 도정’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도지사의 언사가 왜 신년사 제목으로 나왔을까? 답은 과거 경남도정을 살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연이 있다. 민선 8기에 이르는 동안 경남도정은 대권(대통령)과 연관이 많았다.


민선 1~7기 도지사 행보는 자의든 타의든 대권과 무관하지 않았다. 도정에 미친 영향은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았다. 그들의 행보는 세월 속에 잊혀지고 있지만 재임 때 도정 슬로건(구호)은 남아 있다.

슬로건은 자신의 도정 철학을 집약하고 야심찬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과거 도정 슬로건을 곱씹어보면 도민 중심보다 도지사의 입신양명을 위한 메시지가 더 많았다는 지적이다. 행정이 정치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휘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표적 부작용은 도지사 중도 사퇴로 인한 행정 공백과 정책 연속성 훼손이다.

1~3기 김혁규 전 도지사는 중도사퇴 명분을 ‘국가 발전의 대의를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다. 정계로 진출한 그는 국무총리 꿈이 좌절됐고, 대선에는 나서지도 못했다.

3~4기 김태호 전 도지사 재임시절 행보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당시 3선 도지사 공천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도정 슬로건은 ‘세계로 미래로 뉴 경남’이었다. 재임 동안 중앙 무대로 진출하고자 하는 정치적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추진해 왔던 ‘남해안 시대’는 후임들의 흔적 지우기로 인해 물거품으로 변했다.

5기 경남도정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당시 무소속 김두관 야권단일후보의 당선이었다. 그의 도정 구호는 ‘대한민국 번영1번지 경남’으로 장대했다. 하지만 그는 취임 2년여 만인 2012년 7월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선 출마를 위해 도지사를 그만뒀다.

5~6기 홍준표 전 도지사는 2012년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보궐선거로 당선됐다. 그의 슬로건은 ‘당당한 경남시대’였다. 당시 중앙 정치권에 활동하다 내려온 그는 자신의 존재감과 힘을 보여주기 위해 ‘당당한’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 나서기 위해 임기를 1년 이상 남기고 중도사퇴했다. 7기 김경수 도정 슬로건은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이다. 그는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를 전제로 ‘대권 후보’로 거론됐다. 그는 재임 중 구속과 낙마로 두 번의 도지사 권행대행 체제를 야기했다.

이처럼 역대 경남도지사 행보는 도민중심이 아니라 대권을 꿈꾸는 야심가들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은 도청에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었던 셈이다. 대권 실패 원인이 설왕설래할 때마다 “(도청)터가 안 좋다”는 얘기가 농담처럼 오갔다. 근거 없는 풍수론까지 등장할 정도로 경남도정은 대권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역으로 도민중심에서는 멀어졌다. 급기야 지난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일부지만 “대권과 무관한 도지사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CEO형 행정 전문가’를 자처한 박 도지사가 당선됐다. 그가 추진하는 △월 1회 도민회의 개최 △경남사회대통합위원회 발족 △남해안 관광산업 활성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원전·방산 입지 확보 △시·군 순방을 통한 도민의견 수렴 △응급의료 컨트롤타워 구축 등은 실무행정이면서 도민 중심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도정 슬로건도 ‘활기찬 경남·행복한 도민’이다. 활기찬 경남은 경제활성화를, 행복한 도민은 복지실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슬로건 자체가 대권을 연상케 하는 거창한 구호는 아닌 듯하다.

지난해 9월 진주시민과의 대화에서 그는 “도지사 마무리하면 다른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해 12월 통영에서는 “대통령 할 생각이 없다”고 단언했다. 지난 10일 도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는 “어려운 도정을 일으키는 것이 마지막 공직 봉사”라며 “중앙정치권으로 갈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의 행보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도민 중심의 도정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대권과 멀어져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