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 여아 유치원 버스에 치어 사망했는데…운전기사는 집행유예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 동부지원, 금고 1년·집행유예 2년 선고
법원 “주의의무 소홀했으나 아이 인식 어려워”
유족 “사과 없이 합의금 공탁해 형량 낮췄다” 반발

지난해 초 제주시 화북동의 학원가에서 경찰이 학원 차량의 법규 위반 사항을 점검·단속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연합뉴스 지난해 초 제주시 화북동의 학원가에서 경찰이 학원 차량의 법규 위반 사항을 점검·단속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연합뉴스

22개월 된 여아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유치원 통학버스로 치어 숨지게 한 운전기사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유족 측은 사과 한 번 없었던 가해자에게 터무니 없이 낮은 형량이 나왔다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4단독 서근찬 판사는 21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유치원 버스 운전기사 60대 남성 A 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지난해 7월 4일 오전 8시 45분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22개월 된 B 양을 유치원 통학버스로 치어 목숨을 잃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B 양의 보호자는 B 양 오빠를 먼저 유치원 통학버스에 태웠다. 수사당국은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자 B 양이 버스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고, 그대로 출발한 버스에 부딪혀 목숨을 잃은 것으로 봤다.

서 판사는 A 씨가 차량을 출발하기 전 사이드 미러 등을 이용해 전방과 후방, 양 측면 등을 잘 살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출발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지만, 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서 판사는 “전방에서 보행하던 유아에게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 아동의 키가 작아 승합차 앞으로 온 사실을 인식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 동승하고 있던 승하차 보조선생의 말을 듣고 출발한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라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유족 측은 1심 집행유예 판결에 반발하고 있다. 유족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시우의 최재원 변호사는 “아이의 허망한 죽음으로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는데 가해자 측에서는 여태껏 진정 어린 사과 한 번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 유족 측은 “당시 CCTV 영상을 보면 아이가 운전석으로부터 2~3m는 떨어져 있었고, 주변에는 볼록거울 형태의 도로반사경도 있었다”며 “운전기사가 왜 아이를 보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인터뷰했다.

지난달 처음 도입, 시행된 ‘형사공탁 특례제도’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피고인이 피해자 측의 인적 사항 등을 알지 못해도,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공탁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데 유족 의사와 상관없이 형량을 낮춰준 것이라는 반발이다.

최 변호사는 “유족 측은 돈으로 합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피고인은 보험 회사에서 사고로 지급받은 돈 등으로 형사 합의금을 공탁했다”며 “제대로 된 사과 하나 없이 공탁으로 감형이 된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한편 22개월 여아의 안타까운 사고 여파로 어린이 통학버스의 안전 부실을 지적하는 여론이 커지자, 부산시교육청과 부산시는 어린이 교육기관 117곳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도로교통법·영유아보육법 등 관련 법령 개정에 나섰다. 부산지역 모든 어린이 통학버스에 후방 감지 센서와 360도를 운전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어라운드 뷰’ 감지 카메라의 장착을 추진하기도 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