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현수막 정치, 이게 최선인가요?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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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사회부 차장

설이나 추석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정치인 얼굴이 찍힌 현수막이다. 집마다 찾아다니며 명절 인사를 건넬 순 없으니 그들로선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누가 하나를 걸면, 두 개를 건다는 이도 있다. 이렇다 보니 명절 목전이면 동네 곳곳이 현수막으로 도배 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같은 덕담이 대부분이지만 보는 이 입장에선 썩 유쾌하지 않은 풍경이다.

그런데 유독 올 설엔 이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많았던 것 같다. 때가 때이니만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기려 해도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작년 연말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 개정으로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은 별도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간 게시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이번 법 개정 취지는 사문화된 정당 현수막 관련 제재를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허가나 신고 없는 정당 게시물 대부분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현수막을 철거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불법 현수막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강제 규정이 아닌 임의 규정인 데다, 정치인 보인이 단체장을 맡고 있는 현실에 지자체가 앞장서 단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이를 양성화하는 대신, 지정게시대 외 도로 등에 설치되는 불법 현수막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대다수 정당 현수막은 정치인 치적 선전이나 여론전 수단이 되고 있다. 가로수나 전신주를 지지대 삼아 걸린 것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태반은 합법 요건인 정당 명칭과 연락처 그리고 설치업체 연락처와 표시 기간을 기재하지 않았다. ‘문자 공해’ 못지않은 ‘현수막 공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 경남 거제에선 꼴사나운 설전까지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거제지역위원회는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이 관내 육교에 설치한 명절 인사 현수막을 지목하며 ‘공익 홍보에 사용돼야 할 육교를 불법적으로 개인 홍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실제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은 ‘육교’를 광고물 등의 표시가 금지되는 장소로 명시하고 있다. 지역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날을 세웠다.

반면 서 의원은 개정된 법률을 근거로 ‘명백한 합법’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집권했던 민선 7기 사례에 비춰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며 역공에 나섰다. 현 더불어민주당 거제지역위원장인 변광용 전 시장도 재임 시절 관내 육교 5~6곳에 현수막을 걸었다며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여론조작’이라고 했다.

보고 있자니 시시비비를 떠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려운 지역 경제에 시민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진 데다, 난방비 폭탄으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민심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다.

이번 명절, 경기도 내 가장 작은 기초의회가 언론과 SNS에서 화제가 됐다. 국민의힘 5명에 더불어민주당 2명인 과천시의회 여야 새내기 의원들이 명절을 앞두고 선보인 공동 현수막이 협치가 사라진 정치권에 작지만 큰 울림을 줬다. 정쟁에 매몰된 지역 정가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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