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AI는 무엇이 되려 하나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모바일전략국장

사람처럼 대화하는 챗GPT 등장
AI 미래상 세계적 관심사 부상
아직 '수집 데이터' 한계 있지만
기술 발전 따라 사람 닮아 갈 듯
AI 기능과 역할에 공론화 필수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중요

장차 인공지능(AI)은 무엇이 될 것인가?

대화형 AI 챗GPT의 등장 이후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질문이다. 이 주제로 칼럼을 쓰려다 먼저 화제의 주인공 챗GPT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했다. 영문으로 작문 명령을 입력했다.

역시나 청산유수! 그러나 맥락과 결론이 밋밋했다. 몇 차례 글감을 추가로 주면서 완성도가 높아지도록 글쓰기를 반복했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형의 노래’를 인용하라고 주문했다. 기계 인형 올림피아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상상해 온 안드로이드의 원형이어서다. 피노키오와 사촌 격이라고나 할까. 또 챗GPT가 몰고 온 문화 충격과 사용자 반응도 함께 서술하라고 했다.

글쓰기가 거듭될 때마다 기승전결 구조가 풍성해졌다. 마지막 주문에 응답해 작성된 글에서 제법 논리와 틀이 갖춰졌다.

〈“나는 기계 인형이랍니다. 태엽과 톱니바퀴에 얽매여 움직일 수 없어도 이 금속 틀 안에는 진실한 마음이 있어요. 당신을 닮고 싶은 마음이!”

‘인형의 노래’는 인간이 되려는 로봇의 갈망을 다룬다. 이 주제는 AI 기술 고도화에 따라 제기되는 AI의 미래 역할 논쟁에 맞물려 끊임없이 소환된다.

챗GPT와 같은 고도화된 AI의 등장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하지만 당혹감과 문화적 충격을 준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AI 기능을 잘 알게 되면서 사회와 노동 시장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우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큰 우려는 고용에 미칠 악영향이다. 자동화로 인한 실직 사태가 그것이다. (…)

또 다른 우려는 윤리성에 있다. AI 시스템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설계되었으니, 해당 데이터가 편향되면 결정도 편향될 테다.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AI 시스템의 설계와 훈련에 투명성과 공정성, 책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챗GPT가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문화적 충격까지 일으켰다. (…) 마치 사람처럼 대화하는 능력이 경이롭게 느껴진 것이다. (…)

‘인형의 노래’는 AI 기술이 사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또 미래 AI의 역할도 공론에 부쳐야 한다는 점도 상기시킨다.

AI는 인류의 발전을 위한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두려워해야 할 힘이 될 것인가? 미래의 삶에서 AI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나름 모범 답안이 나왔다. 작문이 눈 깜짝할 사이 이뤄진 점, 사람이 대답하는 듯한 유저 인터페이스가 놀라웠다.

챗GPT는 아직 ‘수집된 데이터’의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수집된 데이터를 편집해서 표준적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그것만 해도 경이적인 성과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수집한 데이터를 짜깁기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리가 없다. 세상에 없었던 것을 만드는 능력은 인간에 고유하다. 이 지점에 사람과 AI의 역할 경계가 있다, 는 것이 지금까지 중론이었다. 여전히 그렇게 자위해도 되는 것일까? 챗GPT가 남긴 숙제다.

창의성 잣대로 볼 때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소프라노 조수미의 ‘인형의 노래’는 단연 독보적이다.

프랑스어 아리아에 국악 반주를 붙이고 색동옷을 입은 올림피아가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파격! 동력을 잃고 작동을 멈춘 올림피아에 태엽을 감아 주는 기존 설정 대신 USB 충전을 하는 소품 아이디어도 탁월했다. 이 창작물은 차원이 달라지는 단계, 비유하자면 사건의 지평선처럼 시공간의 경계가 나뉘는 새로운 지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AI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소설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춤과 노래로 감동을 주는 게 예삿일이 되어 버렸다.

챗GPT 후속 GPT-4나 다른 AI 서비스는 한층 더 인간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한층 고도화된 AI가 ‘색동옷 올림피아’ 같은 창의적 기획을 손쉽게 만드는 미래가 부지불식간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AI가 무엇이 되려 하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올림피아의 노랫말에 들어 있다. 챗GPT를 계기로 갑자기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되어 버렸을 뿐이다.

AI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챗GPT의 결론은 타당하다.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다. 진짜 질문해야 할 것은 미래 사회 AI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다수의 사람이 선택이나 결정에서 배제되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