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공유주택 열었더니 ‘도란도란’ 가족이 생기다 [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①]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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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최초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 돌봄망 화제
가족 같은 생활로 유대감 끈끈
국가 제도 공백 메울 대안 주목
사업 예산 안정적 마련이 숙제

“와 전화를 안 받노. 뭔 일 있는 줄 알았다.” 심장이 안 좋다던 심진수(71) 할아버지가 태연하게 4층 거실에 들어서자 유두남(79) 할머니의 타박이 먼저 나섰다. 어깨를 다친 박경자(80) 할머니에게 주려고 물을 전자레인지에 덥히던 중이었다. “그래서 병원에선 뭐래요?” 박가을(가명·80) 할머니도 자리를 잡고 앉아 심 할아버지의 안부를 챙긴다.

여기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커뮤니티하우스 ‘도란도란하우스’에 살고 있는 노인 넷이 있다. 유두남, 박가을, 박경자, 심진수 씨. 평균 나이만 78세다. 접점 하나 없이 살던 넷이 모여 식구가 됐다. 박경자 할머니는 말했다. “밥 같이 먹고 잠 같이 자면 가족이지. 죽을 때 다 돼서 만난 마지막 가족.”

도란도란하우스는 부산 최초의 노인 공공 공유주택이다. 2019년 보건복지부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에 선정되면서 2021년 만들어졌다. 4층짜리 건물의 3, 4층에는 각각 6개의 방이 있다. 최대 20년까지 살 수 있고, 65세 이상 부산진구민이면 조건 없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

‘조건 없이 누구나.’ 대한민국 노인돌봄제도에서 도란도란하우스가 내건 조건은 낯설다. 현재 노인돌봄제도는 크게 노인장기요양서비스와 저소득층 대상 서비스로 설계돼 있다. 노인들은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거나 가난해야만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픔과 가난을 인정받지 못한 노인들은 어떻게 될까. 지금 부산에는 제도가 빠뜨린 노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부산 노인 68만 1885명 중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인정받은 노인은 단 9%(6만 1329명)였다. 전국 최대 노인 기초수급자 비율을 가진 도시지만, 기초수급자 또한 변수에 따라 지급 급여가 제한된다. 8대 특별시·광역시 가운데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부산이지만 노인 돌봄망은 여전히 헐겁다.


도란도란하우스는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살던 곳에서 죽고 싶다’는 의사를 반영해 시작된 돌봄 모델이다. 노인 돌봄 공백에 대한 지역사회의 대안으로 충분히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소중한 씨앗이 싹트기도 전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도란도란하우스 출범 1년 만에 운영 예산 40%가 전면 삭감됐다. 통합돌봄사업 예산 중 국비 8억 원, 시비 2억 원 지원이 중단된 탓이다. 소식을 들은 도란도란하우스 입주자들은 불안감이 크다. 예산 지원 중단 소식을 들은 박가을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정부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내일은 두렵습니다.”

〈부산일보〉는 도란도란하우스에 입주한 4인의 이야기를 통해 꺼져 가는 불씨를 되살리려 한다. 한순간 가난해졌고, 재개발로 갈 곳이 사라지고, 독립을 원하고, 외로웠던 이들의 사연에는 국가가 놓친 지역사회 노인들의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부산복지개발원 이재정 책임연구위원은 “부산은 전국의 다른 지자체에 비해 고령화가 약 5년 빠르게 진행되는 곳인데 제도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 단위로 노인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도란도란하우스와 같은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역공동체만 살아 있다면 고질적인 고독사, 가족 간병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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