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살기 딱 좋은 ‘해심당’, 죽을 때까지 있을 내 집이죠~” [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④]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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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4. 한발 앞선 서울형 '마을 돌봄'

바다 같은 마음, 햇살 있는 집 뜻
도봉구 노인공유주택 25명 생활
내부 구조도 거동 불편없게 설계
생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의지해

바리스타·텃밭 조성 등 새 활력
고령화 문제 해결 ‘사회적 자본’
“부산형 복지체계 촘촘한 구축을”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노인공유주택 해심당 입주민들이 따뜻한 햇살 아래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해심당 제공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노인공유주택 해심당 입주민들이 따뜻한 햇살 아래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해심당 제공

“이사를 와 보니 안심이 됐어요. 이제 여기가 죽을 때까지 살 내 집이로구나.”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도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공유주택이 있다. 바다와 같은 마음, 따뜻한 햇살이 있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해심당’이다.

지난 13일 이곳에서 만난 해심당 자치회 총무 이현민(74) 할머니는 지난해 5월 입주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업 실패로 반지하 방을 전전하던 이 할머니는 해심당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50여 년을 도봉구에서 살았던 이 할머니에게 도봉구는 마음의 고향이다.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20년 넘게 다른 동네에서 머물렀지만, 노년은 도봉구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돌아 돌아 도봉구 해심당에 돌아온 날, 반가운 얼굴을 알아본 이웃들은 고구마를 쪄오고 옥수수를 가져왔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해심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도봉구청, 사회단체가 협업해 만든 노인 공유주택이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LH 시범사업으로 추진돼 2021년 문을 열었다. LH가 매입한 지상 4층 임대주택에 노인 25명이 모여 산다.

노인친화형 주택으로 설계한 이곳에는 발에 걸리는 턱이 없다. 9평 방에는 휠체어가 들어올 것을 감안해 화장실을 넓게 만들었고, 모든 방에 베란다를 두었다. 65세 이상 집이 없는 노인이면 누구나 심사를 거쳐 입주할 수 있다. 보증금 800만 원에 임대료 월 30~40만 원이며, 거주 기간은 최대 20년이다.‘살던 곳에서 죽을 때까지.’ 지역사회통합돌봄 슬로건이 이곳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다. 입주자 25명 중 절반은 거동이 어렵다. 집 안에서 요양보호사와 이현민 총무, 이웃의 도움으로도 병원에 가지 않고 생활한다. 지난해에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던 어르신 2명이 세상을 떠났다.

옥상 텃밭을 가꾸고 있는 어르신. 해심당 제공 옥상 텃밭을 가꾸고 있는 어르신. 해심당 제공

해심당을 관리하는 김익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본부장은 “한국에서는 질병이 있는 노인들이 대부분 병원이나 의료시설로 가지만 노인맞춤형으로 설계된 해심당에서는 간병인만 있다면 생활에 무리가 없다”며 “평생 이 지역에서 사시던 어르신들도 건강 상태가 아주 나빠지기 전까지는 최대한 살던 집에서 머물고 싶어 하신다”고 말했다.

새집에서 노인들의 새로운 도전도 이루어진다. 이 할머니는 해심당 바리스타가 됐다. 1층에 있는 카페 ‘향’이 바리스타를 모집하자 선뜻 도전했다. 급하게 자격증도 땄다. 일주일에 3번 3시간씩, 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할머니는 “커피라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이런 일을 생각도 안 해봤는데 해심당에 오면서 새로 하게 된 일이 많다. 재미있다”고 말했다. 옥상 텃밭도 해심당의 자랑이다. 텃밭이 익숙한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봄이면 200여 종 채소와 꽃을 심고 어르신들이 텃밭을 가꾸어 나간다. 김 본부장은 “제2의 해심당이 더 늘어나야 한다”면서 “초고령사회가 되면 결국은 해심당과 같은 노인공유주택이 늘어나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맞춤형 주택에서는 어르신들이 서로 챙기고 어울려 살아가며, 노인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 고령화 문제로 꼽히는 건강 관리, 사회적 고립 등이 동시에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상 4층 규모의 해심당 건물 전경. 해심당 제공 지상 4층 규모의 해심당 건물 전경. 해심당 제공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와 이곳 ‘해심당’ 설계에 참여한 이연숙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이러한 노인맞춤형주택이 ‘사회적 자본’을 기르는 일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이 교수는 “하나의 노인 공유주택에서 주민 20명의 고독사, 우울증, 낙상 등이 예방된다고 생각해보면 국가적으로는 그만큼의 케어 비용을 줄이는 일이 된다. 주민들 사이에 쌓인 사회적 자본이 고령화 문제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결과적으로 효율적인 사회안전망이 갖춰지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노인을 둘러싼 사회안전망을 한발 앞서 갖추고 있다. 2019년 7월부터 서울시에서는 ‘돌봄SOS’ 서비스가 출발했다. 돌봄SOS는 만 50세 이상 성인 또는 모든 연령의 장애인을 주요 대상으로 재가서비스, 동행지원, 식사 지원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을 돌봄 사업이다. 돌봄이 필요한 모든 시민이 즉각 서비스를 지역 내에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시는 서울 25개 구 425개 동의 각 동 주민센터에 돌봄SOS센터를 설치했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72시간 안에 돌봄 매니저가 방문한다. 중위소득 100% 이하 시민에 한해 전액을 지원하고, 그 외 시민들은 서비스별로 책정된 수가에 따라 자부담한다. 지난해 총 4만 5000여 건이 접수됐다. 서울에서 마을 돌봄은 이미 안착한 지 오래다. 서울시는 돌봄SOS를 포함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지원을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만들었다. 5개 팀에 25명이 근무한다. 서울시 안심돌봄복지과 관계자는 “장기요양보험 등급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가족 돌봄에 기대는 어르신 등 공적 돌봄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다”며 “사업 출범 4년 차에 접어들어 주민도 서비스를 잘 알고 쉽게 이용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윤성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이 늘면서 복지 서비스 중복과 누락이 발생하는 탓에 전체적으로 촘촘한 지역밀착형 서비스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라며 “부산 205개 동도 정주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콤팩트한 복지 체계가 들어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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