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한우 세일 행사 ‘소프라이즈’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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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최근 솟값 폭락, 정부 소비 촉진 대책
전국 판매장에서 대대적인 가격 할인

수백 명 구름 인파·오픈런까지 발생
한우 소비, ‘비싼 가격’이 문제 확인

고질적인 복잡한 유통 구조가 관건
정부·업계, 더는 개선 미뤄선 안 돼

전국 농축협 하나로마트 980여 곳에서 진행된 한우 반값 할인 행사 마지막 날인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하나로마트 서울축협 월곡점에서 시민들이 쇠고기 구매를 위해 줄 서 있다. 연합뉴스 전국 농축협 하나로마트 980여 곳에서 진행된 한우 반값 할인 행사 마지막 날인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하나로마트 서울축협 월곡점에서 시민들이 쇠고기 구매를 위해 줄 서 있다. 연합뉴스

며칠 전 전국이 한우(韓牛) 세일 행사인 ‘소프라이즈’로 들썩거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도매가격이 크게 떨어진 한우의 ‘소비 촉진’을 위해 최대 5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쇠고기를 판매하는 행사를 벌이면서 전국 곳곳의 판매점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할인된 쇠고기를 살 수 있는 전국 농협유통 하나로마트에는 개장도 하기 전부터 수백 명의 구매 인파가 몰리는가 하면 개장과 동시에 유례없는 ‘한우 오픈런’까지 벌어졌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다른 하나로마트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빚어졌다고 하니, 가히 소프라이즈 열풍이라고까지 부를 만하다. 이달 17일 처음 시작해 3일간 진행됐던 소프라이즈 행사는 23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10일간 또 진행된다. 이어 오는 6~7월, 10~12월 중에도 열릴 예정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흥행 가도가 예상된다.

정부가 이처럼 한우 소비 촉진 행사를 기획한 것은 최근 솟값 폭락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한 전국의 한우 사육 농민들을 돕기 위한 일환이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사육 중인 한우는 역대 최대치인 약 358만 마리로, 2015년부터 연속 7년간 계속 증가세라고 한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당분간 더 지속할 전망이다.

반면 최근 산지 솟값은 사육 두수 증가와 사료비 폭등으로 인한 밀어내기 출하로 지난해 대비 최대 30% 가까이 폭락했다. 사육 농민들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얼마 전에는 이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면서 정부는 어떤 식이든 한우 농가를 돕는 대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일단 한우 소비 촉진을 통한 해결책을 선택했다. “한우 소비를 촉진시키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런데 며칠 전 진행된 한우 세일 행사를 보면 사육 농민의 어려움은 그동안 한우 소비가 부진한 데 있었던 것이 아님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전국 판매장에는 할인 소식을 들은 구매자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구매자들은 판매장 앞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떤 곳은 준비한 물량이 금방 바닥났다. 이런 상황에 ‘소비 촉진’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동안 가격이 너무 비싸 사 먹지 못했을 뿐, 적정한 가격만 된다면 소비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늘 그렇듯 ‘쇠고기 가격의 미스매치’ 현상이 문제였다.

알다시피 한우는 돼지고기, 닭고기와 같이 육류 중 주류로 꼽힌다. 그러나 서민에게 한우는 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싼 데다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강하다. 평소 가장 먹고 싶은 육류지만, 자주 마음껏 한우를 먹을 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다. 잠재적인 수요는 항상 차고 넘치나,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유효 수요층은 한정적인 것이 바로 쇠고기다. 한우 세일 행사 소식에 귀가 번쩍 뜨여 아침 일찍 판매장으로 달려간 수많은 서민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우 수요는 이처럼 흘러넘치기 때문에 굳이 소비 촉진이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다. 여건만 적절하게 조성한다면 한우 소비는 가만히 놔둬도 저절로 해결될 사안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런 지적이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솟값 파동이 일 때마다 제기되는 단골 해결책임에도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없다. 대표적으로 한우 판매의 유통 구조를 꼽을 수 있다. 산지에선 사육 농민들이 사육을 포기할 만큼 솟값 폭락이 극심한 데도, 소비자들은 전혀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 사육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 쇠고기 가격의 미스매치 현상을 일으키는 6~8단계의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밝힌 쇠고기 가격 비중에서 농민 몫은 약 52%에 불과하다. 나머지 48%는 유통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일부에선 쇠고기는 가공과 분류 등 처리 과정이 다른 육류에 비해 복잡하고, 일반 식당에서 판매되는 부위도 몇몇 특정 부위에 한정돼 유통 과정에 드는 비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 해도 복잡한 유통 구조의 문제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도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산지와 소비자 간 가격 괴리를 줄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 도매가격의 등락에 따라 소매가격도 함께 변동하는 가격 시스템의 필요성도 자주 거론된다.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지점이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한우 파동을 생각하면 이제 유통 구조 개선은 더는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육 농민도, 소비자인 국민도 모두 피해자로 만드는 구조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이번 한우 세일 행사가 바로 그 생생한 실례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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