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로 몰려든 물고기 떼처럼…밀양 ‘3대 신비’ 만어사
만어사 앞 산비탈에 널린 ‘만어석’
불상 자리에 바위 봉안한 ‘미륵전’
삼층석탑·소원 돌 등 곳곳 볼거리
경남 밀양은 청정한 산천초목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곳이다. 그런 밀양엔 3대 신비가 있다.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과 국난 때마다 표면에 이슬이 맺혀 땀 흘리는 비석으로 알려진 ‘표충비’, 산비탈에 지천으로 널려 두드려 보면 종소리·쇳소리가 난다는 만어사의 ‘만어석(萬魚石)’이 그것이다.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밀양의 불가사의는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는 순간 이내 사실이 되고 만다. 여행의 즐거움 역시 배가된다. 만어사의 만어석이 가진 신비로움을 찾아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시는 올해를 ‘밀양 방문의 해’로 정했다. 만어사는 밀양시가 추천하는 대표 여행지이기도 하다.
■아담·소박하지만 범상치 않은 고찰
만어사(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는 674m 만어산 8분 능선에 터를 잡고 있다. 통도사의 말사이기도 한 고찰이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오르면 만어사 주차장(무료)에 닿는다. 주차장 옆으로 푸른 이끼를 입은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이 눈에 들어온다. 너덜겅의 돌들은 여느 산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돌이 아니다. 어디서 깎였는지 대체로 둥그스름하고 집채같이 큰 것부터 맷돌만 한 것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거무스름한 바윗덩어리들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비탈을 타고 내려간다. 신비한 돌을 보러 왔다지만, 잠시 머문 시선을 만어사 본당으로 돌려 계단을 오른다.
만어사 본당에는 대웅전과 미륵전, 범종각, 삼성각 등의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고찰치고는 아담하고 소박하다. 대웅전 앞에는 만어사 삼층석탑(보물 제466호)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과 탑의 양식을 바탕으로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석탑을 둘러싼 펜스 위로는 소원이 적힌 물고기 모양의 목어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달려 있다. ‘만어사(萬魚寺)’ 이름처럼 물고기가 참 많다. 삼성각 오른쪽 계단 위에는 마애석불이 있다. 마애석불은 암벽이나 구릉에 새긴 불상을 말한다. 마애석불 앞 비석에는 부처와 보살의 배움을 받으며 신앙을 키우겠다는 다짐인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이 쓰여 있다.
만어사에는 절을 찾은 사람들이 꼭 들어 보고 간다는 ‘소원 돌’이 있다. 커다란 반석 위에 지름 30~40cm 정도 되는 둥근 돌이 작은 불상 앞에 놓여 있다. 돌이 들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도 있고, 돌이 들리지 않아야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도 있다. 남녀노소 소원돌을 들어 보는데, 돌을 드는 이들이 꽤 있다. 직접 들어 보니 쉽진 않지만 돌이 들린다. 돌이 놓여 있던 오목 팬 부분에서 뭔가 아래로 끌어당기는 느낌이 든다. 범상치 않은 돌임은 틀림없다.
미륵전은 대웅전과 삼성각 등의 본당 전각들과 좀 떨어진 곳에 있다. 미륵전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반석들이 물길처럼 이어진다. 바위들이 만들어 낸 물길이 끝나는 지점 곳곳에 흰 점이 박힌 너부죽한 바위가 있다. 바위 표면을 들여다보니 흰 점은 사람들이 작은 돌로 두드린 흔적이다. 작은 돌을 하나 주워 들고 두드려 보니 하나의 바위에서 위치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난다. 둔탁한 소리가 나는 곳이 많지만, 사람들이 이미 많이 두드려 하얗게 변한 부분에는 확실히 맑은 쇳소리가 나 오묘하다.
미륵전 안에는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바위가 서 있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5m 정도 높이의 바위는 고래가 물 위로 머리를 내민 모습을 닮았다. 미륵바위라고 하는데, 만어사의 신비는 이 미륵바위에서 시작된다. 전각 뒤쪽으로 돌아가니, 바위 뒷부분이 전각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자연석인 미륵바위를 미륵불로 모시기 위해 미륵바위를 중심으로 2층 전각을 지었다고 한다.
■꿈 같은 전설들 살아 숨 쉬다
미륵전 앞마당에 서면 만어사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탄성을 자아냈던 검은 바윗덩어리들이 널려 끝없이 펼쳐진다. 만어석이다. 돌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물고기를 닮았다. 돌들은 마치 물고기 떼를 이뤄 미륵바위를 향해 거슬러 오르는 듯하다. 돌이 널려 있는 비탈은 너비는 일정치 않지만 100m 정도, 길이는 500m 정도 된다고 한다.
미륵바위와 만어석에 대한 얘기는 두 가지가 전해 내려온다. 하나는 가야 수로왕 때 동해의 용과 물고기들이 부처의 설법을 듣고 감화를 받아 이곳으로 올라와 바위로 변했고, 수로왕이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며 이곳에 만어사를 지었다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수로왕 때에는 경남 지역에 불교가 들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에 창작됐을 것이라는 학설과 우리나라 고대 불교의 남방설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된다는 학설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가 전하는 것으로,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죽을 때가 되자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 줬다. 왕자가 길을 떠나자 수많은 물고기 떼가 뒤를 따랐는데, 왕자가 머물러 쉰 곳이 바로 이곳 만어사였다. 그 뒤 왕자는 미륵바위가 되고, 물고기 떼는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고 한다. 왕자가 미륵바위가 됐듯, 미륵바위에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지금도 득남을 위해 미륵바위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만어석은 물고기산에 서린 부처님의 그림자라는 뜻으로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고도 하고,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나 쇳소리가 난다고 해서 ‘경석(磬石)’이라고도 부른다. ‘만어사 어산불영’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52호로, ‘만어산 암괴류(岩塊流)’는 천연기념물 제528호로 지정돼 있다. 암괴류는 골짜기나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린 듯 쌓여 있는 돌무더기를 뜻한다. 정부와 지자체 모두 물고기떼를 닮은 신비스런 너덜겅 지대를 소중하게 보존·관리하고 있다. 지질학적으로 만어석은 한반도가 빙하기가 끝난 시기에 물리적·풍화적 작용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독특하고 뛰어난 경관으로 보존 가치와 학술적 가치가 커 무단으로 돌을 채취하거나 훼손할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유의해야 한다.
돌을 밟고 너덜겅 지대에 들어가는 건 상관없다. 만어석의 여정이 궁금해져 직접 바위들을 밟고 걸어 들어간다. 어떤 이들은 더 멀리 가보려 돌을 뛰어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작은 돌로 바위를 두드려 보고 있다. ‘물고기들아~ 이 산중턱에는 어쩐 일이냐’며 속삭이며 두드려 보니 둔탁한 소리가 난다. 자리를 옮겨 재차 두드려 본다. 이번엔 맑은 쇳소리가 난다. 대여섯 개 중 한두 개 어림으로 쇳소리가 난다. 바위는 대체로 큼지막한 데다 경사가 있다.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다칠 수 있겠다 싶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이 더 많은 물고기들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 나온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만어석에 부딪치며 종소리·쇳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말도 있고, 한여름 내린 소나기가 뜨거워진 바위를 식히며 수증기가 얇게 퍼지면 수많은 물고기가 주둥이를 물 위로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설법을 경청하는 모습 같다는 말도 있다. 비가 올 때, 한여름 소나기가 내릴 때 꼭 한번 찾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만어사는 만어석 못지 않게 운해(雲海)가 유명한 곳이다. 만어사 운해는 밀양의 대표적인 비경으로 손꼽힌다. 운해는 산 위에서 굽어볼 때 바다처럼 널리 깔린 구름을 말한다. 만어사 주변에서 피어 오르는 운해는 천지를 뒤덮어 장관을 이룬다. 비가 내리거나 비가 내린 뒤, 또는 습도가 높은 날 새벽 시간에 기온과 습도 등의 기후 조건이 딱 들어 맞아야 어렵사리 만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동해의 수만 마리 물고기들이 떼를 이뤄 낙동강을 지나 밀양 만어산으로 거슬러 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랜만에 다녀온 신비스러운 여행이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