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순번’ 기다리던 고성 유기동물, 공무원 품에서 ‘견생 2막' 연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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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보호소 관리 40마리 관공서 분양
공직자 공감대 형성, 입양 문화 확산 기대

고성군은 15일 농업기술센터 내 임시 동물보호센터에서 유기동물 입양 행사를 열고 공공기관 분양을 마무리했다. 이상근 군수(오른쪽)와 최을석 군의회 의장(왼쪽)이 새 가족이된 믿음이와 희망이를 쓰다듬고 있다. 고성군 제공 고성군은 15일 농업기술센터 내 임시 동물보호센터에서 유기동물 입양 행사를 열고 공공기관 분양을 마무리했다. 이상근 군수(오른쪽)와 최을석 군의회 의장(왼쪽)이 새 가족이된 믿음이와 희망이를 쓰다듬고 있다. 고성군 제공

새롬이와 힘찬이, 믿음이와 희망이, 건이와 강이…. 주인에게 버림받아 길거리를 전전하던 유기동물들이 관공서에 터전을 잡고 새 이름과 함께 견생 2막을 시작한다.

공직사회에 유기동물 보호 공감대를 형성해 지역 내 입양 문화를 확산시키면서 유기동물보호소 과밀 문제까지 해소하려 경남 고성군이 내놓은 아이디어다. 동물복지 실현에 의미 있는 시도가 될지 주목된다.

고성군은 15일 농업기술센터 내 임시 동물보호센터에서 유기동물 입양 행사를 열고 공공기관 분양을 마무리 했다고 밝혔다. 유기동물 공공기관 분양은 센터에 보호 중인 개체들이 입양되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행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입양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준비한 프로젝트다.

2월 간부회의에서 나온 이상근 군수의 제안이 단초가 됐다. 당시 이 군수는 “유기동물 문제는 특정 부서가 아닌 행정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숙제”라며 본청을 비롯한 의회, 직속기관, 사업소 등 20개 부서에서 2마리씩 총 40 마리를 입양해 키워보자고 했다. 반려인인 자신의 경험에 비춰 공무원 인식 변화는 물론 행정 신뢰도를 높여 일반군민의 입양을 독려하는 데도 적잖은 도움될 것이라는 게 이 군수의 생각이었다.

이후 소관부서를 중심으로 입양 절차를 진행했고, 이날 군의회 분양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입양 대상은 각 기관장이 직접 센터를 방문해 선정했다. 새로운 이름도 지었다. 본청은 민선 8기 군정 구호인 ‘고성을 새롭게, 군민을 힘나게’를 담아 새롬이, 힘찬이로 했다. 군의회는 믿음이 희망이, 보건소는 건이, 강이다. 공무원 가족과 함께할 전용 하우스도 선물받았다. 사료 급여나 청소 등 일상적인 관리는 입양한 부서가 전담하고, 희망자가 있으면 개인에게 재분양할 계획이다.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창고 동을 개조해 만든 임시 동물보호센터. 80마리가 적정 수준인 230㎡ 면적에 한때 200마리가 넘는 동물이 들어찼다. 부산일보DB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창고 동을 개조해 만든 임시 동물보호센터. 80마리가 적정 수준인 230㎡ 면적에 한때 200마리가 넘는 동물이 들어찼다. 부산일보DB

이번 분양으로 센터에 남은 보호동물의 생활 여건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과거 지역 동물병원에 유기동물 관리를 맡겼던 고성군은 2021년 임시 보호시설을 마련해 직영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반려동물 가구가 늘어나는 만큼 버려지는 동물이 급증하면서 한계에 다다랐다. 작년 1월엔 80마리가 적정 수준인 230㎡ 면적에 무려 212마리가 들어찼다. 3.3㎡도 안 되는 우리 1칸에 4마리가 기본, 이마저도 부족해 작은 이동식 케이지를 닭장처럼 층층이 쌓아 올렸다. 혈변 등 전염성 질환이 있는 개체는 야외 컨테이너에 따로 격리하고, 덩치가 크고 성질이 사나운 놈들은 아예 밖으로 빼내 관리했다.

갖은 노력에도 민감해진 동물 간 다툼은 빈번해졌고, 급기야 새끼를 물어 죽이는 안타까운 사고까지 발생하자 고성군은 일부 개체에 대한 안락사를 예고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소식에 전국 반려인들이 발 벗고 나섰고 죽음의 순번을 기다리던 동물들은 하나, 둘 새 주인 품에 안겼다.

이후 중성화 지원, 길거리 입양제, 반려동물 등록 등 고성군의 다양한 시책이 더해지면서 지금은 46마리로 줄었다. 넉넉한 공간에서 더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고성군은 여기에 상하수도사업소 잉여 부지를 활용한 연면적 650㎡ 규모 신축 동물보호센터도 준비하고 있다. 준공 목표는 2024년이다.

이상근 군수는 “센터가 건립되면 동물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유기동물에 대한 군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유기동물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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