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SNS에선 행복하십니까?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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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디지털미디어부장

동경·선망 대상 되고 싶다는 인정욕구에
명품·고가식사 등 과시소비 넘치는 SNS
나만 남들에 뒤처진다는 조바심·박탈감에
소통은 사라지고 일상만 한층 팍팍해져

지난 12일 일본 주간지 슈칸신초의 인터넷판 데일리신초는 한국의 스시 오마카세 열풍을 다루면서 그 이면에 “한국 남녀의 허세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기사는 “비싸게는 인당 25만 원에 달하는 오마카세를 먹는 것은 이제 한국 젊은이들에게 사치의 상징”이라며 “첫 데이트나 생일, 크리스마스 등의 기념일에 인기 오마카세 레스토랑을 예약하면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훌륭한 선택’이라고 주위로부터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인과 함께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 사진과 영상을 올려 다른 사람에게 오마카세 방문을 자랑하는 것까지가 세트”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에는 일본의 우익 성향 매체가 한국의 명품 소비를 거론하며 “예나 지금이나 외화내빈의 나라”라고 꼬집었다. 서울 특파원을 지낸 해당 기사의 기자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면서도 에르메스 빈 상자를 배경으로 가짜 롤렉스 손목시계를 찬 자신을 찍는다”고 썼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셀프 배상안’과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일전 참패로 가뜩이나 국민적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언론의 노골적이면서도 도 넘은 지적은 불쾌감을 자아낸다. 한편으로는 체면과 남들의 시선을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SNS를 통한 경쟁적 사생활 노출과 결합하면서 빚어진 사회적 병리현상의 일단면을 드러낸 것 같다. 마냥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 오마카세 예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초밥을 뜻하는 스시와 수강신청을 합친 ‘스강신청’이란 말도 MZ세대 사이에 유행한다고 한다.

기성세대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직장인 소셜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합산 연봉이 8000만 원인 부부가 스스로 ‘하류인생’이라고 밝힌 게시글이 화제가 됐다. 남편과 본인의 연봉이 각각 4000만 원, 3700만 원이라고 공개한 작성자는 “회사명이 블라인드에 나오지 않을 만큼 작은 중소기업에 다닌다”며 억대 연봉자와 수입차가 넘쳐나는 이 커뮤니티에서 자신은 실패한 하류인생에 불과한 것 같다며 자조했다.

자신을 표현하고 남과 소통하는 공간인 SNS에서 군중 속의 고독,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호화 여행지에서 값비싼 음식을 즐기는 ‘인증샷’을 올려 ‘좋아요’를 받고, 팔로워를 끌어들이며 마치 셀럽이 된 것 같은 도취감에 빠진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인들의 피드백이 잦아들고 방문이 뜸해지면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더 튀는 사진을 포스팅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악순환에 짓눌린다는 것이다.

이 같은 SNS 과몰입으로 인한 병리현상을 빗대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대표적인 소셜미디어인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따 만든 말로, SNS에 드러난 타인의 모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에 빠진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SNS에 인증샷을 올리고, 좋아요나 댓글이 달리지 않으면 초조해지고, 다른 사람의 SNS를 기웃거리느라 불면증에 시달리며 일상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이 같은 과도한 인정욕구와 남들과의 비교의식은 합계출생율 0.78명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0년대 들어 경쟁하듯 확산된 국내의 SNS 열풍을 타고 남들의 삶을 엿보기도 그만큼 쉬워지면서 남들만큼 잘 살고 잘 키울 자신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SNS 이용률이 높을수록 출생율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나오기도 했다. SNS를 통해 접하는 셀럽들의 화려하고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에 탐닉해 들어갈수록 가족에 헌신하느라 얽매이는 결혼생활을 선택하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SNS 상에서는 나 빼고 모두가 부자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만 같아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박탈감에 빠진다. SNS 속 이미지와 현실 속 나의 모습 간에 괴리감이 도드라질수록 자조감과 허무감 역시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혹은 저 사람도 나처럼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

코로나19 유동성 잔치가 끝나면서 자산가치는 쪼그라들고, 금리와 물가는 치솟고 있다. 언제까지고 ‘욜로’와 ‘플렉스’를 외치며 과시형 소비를 즐기기에는 당장 막아야 할 카드 대금이 버겁고, 살림살이가 너무나도 팍팍하다. ‘과시소비의 경연장’이 된 SNS 문화에 염증을 느껴 계정을 정리하거나 사용 빈도를 줄이는 이들도 늘고 있다. SNS에 빛나는 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고단한 현실을 저당잡혀야 한다면, 당분간 ‘카페인’을 줄여보는 것도 좋겠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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