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챗GPT와 인간의 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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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식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최근 챗GPT가 화제다. 필자도 몇 번 사용해 봤는데 실로 경이로웠다. 이용자의 요구에 맞게 제공하는 서비스 방식도 그렇거니와 결과물의 완성도는 더욱 놀라웠다. 사람들은 보고서를 힘들게 작성할 필요도 밤새워 논문을 쓸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의 과제도 챗GPT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한다.

필자는 인문학자로서 동식물의 생태에 관심이 많다. 동식물은 각자의 생태적 지위에 맞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다. 이를 니치(niche)라 하는데, 그들은 각자의 니치에 따라 주어진 환경을 절묘하게 공유하면서 공생·공존한다. 그러면서 경쟁과 대결을 최소화한다. 딱따구리와 동고비, 홍학과 도비오리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016년에 등장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세돌 선수의 1승은 인류가 알파고에게 거둔 최초이자 최후의 승리가 되었다. 알파고는 1패의 원인을 분석하여 더욱 강해졌고 이후 세계 초일류 기사들과 대국에서 60연승을 했으며 이벤트 대국에서도 모두 승리했다. 그 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다고 판단하고는 은퇴했다. 그렇다면 현재 바둑계와 인공지능은 어떻게 공존하고 있을까? 바둑계는 인공지능을 기사들의 기량 향상과 바둑 해설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각자의 니치에 맞는 공존 방식을 택한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프로 기사들은 더이상 인공지능을 인간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과 인공지능의 니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의 방식을 찾았다.

<총균쇠>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삶의 경험이 풍부한 노인을 마을의 도서관, 지혜의 창고라고 하였다. 그가 솔로몬 제도에 있는 렌넬 섬을 방문했을 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은 섬 주민들은 하나같이 마을의 노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사정을 알아보니, 오래전에 ‘헝기 켕기’라는 회오리바람이 마을을 초토화시켰는데 그때 많은 사람이 죽어버려, 그 노인이 섬에 대한 정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저 새는 주로 언제 섬으로 날아오는지, 이 물고기의 산란지는 어딘지 등 섬의 생태와 환경에 관한 지식을 아는 사람은 노인밖에 없었고, 노인은 마을의 도서관 같은 역할을 했다. 결국 그 노인은 다음 세대의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동체의 유지·발전에 기여하는 지혜의 창고였다.

어떤 사회든 렌넬 섬의 노인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챗GPT 같은 존재가 대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노인과 챗GPT의 차이이다. 둘은 공동체를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노인은 누가 어떤 질문을 하면, 분명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그걸 알아서 무엇을 할건지를 물었을 것이다. 대답에 따라 답을 주기도 안 주기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늘 인간과 공동체의 미래였을 것이다. 기계는 다르다. 왜 묻는지, 무엇에 사용할 건지 따지지 않는다. 물으면 답하라고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은 다음 세대와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위대한 휴먼 헤리티지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니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휴먼 헤리티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뒷받침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이다. 우리의 경쟁자도 지배자도 아니다. 더 뛰어나고 진화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소리 없이 사라질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등장을 두려워할 필요도 우리의 존재와 가치를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들과 공존하면서 인류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인간의 니치가 무엇인지 사유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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