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인간의 얼굴을 한 '수평 엑스포'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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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2030엑스포 현지 실사 성공적
“부산은 모든 걸 갖췄다” 호평
6월 말 총회 PT 준비 ‘발등의 불’
‘세계의 대전환’ 주제 보강 필요
환경 갈등과 분쟁 조정력 키워
민주적인 휴먼 엑스포 지향해야

2030세계박람회 개최 후보지인 부산을 실사하기 위해 방한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4일 오후 부산 사하구 을숙도생태공원을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2030세계박람회 개최 후보지인 부산을 실사하기 위해 방한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4일 오후 부산 사하구 을숙도생태공원을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2030부산엑스포를 향한 여정이 순탄하게 이어지고 있다. 기상도는 쾌청이다. 지난 2~7일 6일간 국제박람회기구(BIE)의 한국 실사로 부산엑스포의 안개가 한층 걷힌 인상이다. BIE를 ‘Busan Is Expo’로 여기는 듯한 시민의 뜨거운 환대에 파트릭 슈페히트 실사단장은 “부산은 정말 모든 걸 갖추고 있다”고 화답했다. 성공적인 실사는 부산과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어 ‘부산에 유치해’를 함께 외친 데서 이미 확인됐다.

이제는 현지 실사가 남긴 과제를 점검하고 다음 전략을 짜야 할 때다. BIE 실사단은 14개 분야, 61개 항목에 걸친 한국 실사 평가를 담은 보고서를 내달까지 작성한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6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BIE 총회에서 171개 회원국에 배포된다. 이때 후보 도시들의 프레젠테이션(PT)도 함께 진행되는데, 보고서를 보완할 비전 제시가 지금의 부산으로선 발등의 불이다.


부산 실사로 분명해진 몇몇 지점이 있다. 2025년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개최로 부산의 2030엑스포 유치가 불리할 것이라는 항간의 소문은 결국 기우에 불과했다. 대륙별 안배에 대해 실사단은 “BIE에는 그런 원칙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아시아에서 월드엑스포가 연달아 열린 사례도 소개했다. 따지고 보면 부산과 경쟁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도 아시아 지역인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도시별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게 또한 확인됐다.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지 않듯이 절대로 도시끼리 비교하지 않는다는 게 BIE의 원칙”이라는 디미트리 케르켄테즈 사무총장은 “동일한 엑스포이지만 개념도 장소도 사람도 다 다르기 때문에 각 후보도시가 제안한 계획, 주제, 장점을 중심으로 타당성을 평가하고 보고서를 제출한다”고 말했다. 네거티브 유치전은 금물이라는 뜻이다.

무분별한 엑스포 개최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1928년 설립된 국제박람회기구인 만큼 공정한 유치전을 보장하고, 선택은 철저히 회원국의 몫으로 돌려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륙별 안배든 경쟁도시 비교든 최종 판단은 회원국의 표심에 달린 셈이다. 결국은 부산이 제안한 계획, 주제, 장점을 통해 경쟁도시보다 비교우위를 확보하는 게 유치전 승리의 관건이다.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 부산이 내세운 2030엑스포 주제다.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그동안 적지 않게 제기되어 왔다.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삶 △인류를 위한 기술 △돌봄과 나눔의 장 등 세부 비전이 뒤따르지만 주제의 막연한 인상은 채 가시지 않는다. 있어 보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주제를 알찬 내용으로 꽉 채우는 게 앞으로 부산이 해야 할 일이다.

이번 현지 실사에서 어느 정도 미션이 구체화됐다. ‘돌봄과 나눔의 장’이라는 부산 이니셔티브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가 있었지만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삶’은 더 개선할 것을 분명하게 주문받았다. 케르켄테즈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위기 대응에 대한 해법을 더욱 전면에 내세워야 할 필요가 있고, 부산 유치가 확정된다면 더 깊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 확장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되돌아보면 실사단의 부산 첫 방문지를 애초에 없었던 을숙도생태공원으로 결정한 것은 대단히 모험적인 시도였다. 부산시는 “과거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여 인간의 버림을 받은 자연 생태가 시의 노력으로 복원됐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지만 을숙도의 환경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철새의 낙원’ 을숙도에는 분뇨이송관과 침출수 이송관로가 여전히 묻혀 있고, 남단 탐조대와 탐방체험장 위로는 을숙도대교가 지나가며, 김해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의 길목이기도 하다.

실사단이 떠나자 문화재청이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 19㎢의 문화재보호구역 해제를 요청한 강서구청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보도가 나왔다. 원자력 발전을 통해 산업계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정부가 내놓았지만 독일은 15일부터 현재 가동 중인 원전 3곳을 최종적으로 멈춰 세우고 원자력 발전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소식이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인 부산에 날아들었다.

부산은 개발과 보존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삶’의 최전선이다. 부산이 보여 주려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는 어쩌면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신산스러운 근현대를 딛고 오늘의 번영을 이룬 부산은 환경 갈등과 분쟁의 조정을 통해서도 못지않은 부산 이니셔티브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막에 세우는 획일적인 수직도시에 맞서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인간의 얼굴을 한 민주적 수평도시. 2030엑스포를 향한 부산의 진보는 거침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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