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왜 때렸어!" 고함치면 학대?… 판결 제각각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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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 괴롭힌 친구 찾아가
“안 참는다” 소리친 엄마 유죄
"또 그러면 신고" 외친 부모 무죄
법원 '사적 복수는 아동 학대’ 추세
판사 따라 양형 달라 기준 시급
“가해자 역고소 부추긴다” 비난도

최근 자녀에게 피해를 입힌 아이에게 찾아가 큰소리로 따진 학부모들이 잇따라 아동학대 혐의로 법정에 서고 있다. 유사한 범죄사실에도 재판부가 판사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어 적정 수준의 판단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성금석)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은 A 씨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범죄사실은 인정되지만, 형의 선고를 일정 기간 미뤄 이후 별다른 사고가 없으면 소송을 중지하는 것이다.


A 씨는 2021년 4월 부산 연제구의 한 태권도장에서 10세 남아 B 군에게 “왜 내 딸 멱살을 잡았어. 너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애한테 왜 그랬어”라며 고함치고 삿대질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보호자가 없는 상태에서 A 씨가 정서적 학대를 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학대 사실은 인정하되 “자녀가 피해를 입어 범행을 저질렀고, 확정적 고의를 갖고 범행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중학생 딸에게 학교폭력을 휘두른 가해 학생을 찾아가 “이제는 안 참는다”고 소리를 지른 학부모가 아동학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3단독 임효량 판사는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여성 B 씨에게 벌금 10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B 씨는 2021년 9월 같은 반 학생인 C 양이 딸을 괴롭힌다는 말을 듣고 다른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 딸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고 말도 걸지 말라 했지. 동네 친구라서 말로 넘어갔는데 이제는 참지 않을 것이다”라고 소리친 혐의 등을 받았다. B 씨가 항소를 하지 않아 1심 판결은 확정됐다.

반면 8세 아들의 친구를 찾아가 “한 번만 더 그러면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겠다”고 소리친 다른 학부모 D 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부는 학부모의 이런 행위를 ‘사적 복수’라 판단하고, 가해 아동일지라도 미친 영향에 따라 아동학대로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순간에는 ‘침해의 현재성’이 인정될 수 있지만 이후에 찾아가 따지는 건 방어적 행동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부산변호사회 학교폭력예방법 연구회를 맡고 있는 최해영 변호사는 “아동학대 피해를 주장하는 아이의 연령이나 당시 상황, 언행의 수위 등이 고루 고려돼야 하기에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판사 개인의 성향에 따라 유무죄는 물론이고 양형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기에 ‘사례 연구’를 통해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한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가해 학생이라 할지라도 꾸지람을 듣고 현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가 중요하다. 정서적 학대를 이유로 병원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며 “섣불리 개인적으로 찾아가기보다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등 정식 절차를 거쳐야 불미스러운 일을 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학부모 김혜선(44·금정구) 씨는 “이런 판결이 자꾸 나오면 학폭 가해자가 역으로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사법부가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진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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