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시어머니가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장병진 경제부 부동산팀장

“요즘 아파트는 시어머니가 절대 못 찾는다.”

이런 농담이 있다. 최근 짓는 아파트 이름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나이가 좀 있다면 아파트 이름을 알려주어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굳이 시어머니까지 가지 않더라도 택시에서 목적지를 말하다 보면 지금의 “○○아파트요”보다는 “옛날 XX 자리요”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할 때가 많다.

예전 우리나라 아파트는 지역과 건설사명이 합해지는 것이 기본이었다. 대표적으로 양정 현대아파트, 주례 럭키아파트 등이다. 2000년부터는 브랜드화가 진행됐다. 롯데건설의 ‘캐슬’, GS건설의 ‘자이’, 삼성물산 ‘래미안’,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등이 붙었다. 단지에 브랜드가 붙자 이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명이 브랜드가 되니 ‘브랜드가 무엇이냐’를 두고 가치의 차이도 생겼다. 최근에는 하이엔드 브랜드도 생겨나며 이름은 더 복잡해졌다. 전국에 있는 아파트 중 가장 이름이 긴 곳 전남 나주에 있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로 25글자나 된단다. 부산도 ‘에코델타시티’라는 길어질 수 있는 요소가 있어 언제든 기록을 깰 수 있다.

또 단지 뒤에는 차별화를 위한 단어들이 붙는다. 바다가 보이면 ‘오션’이 들어가고, 강이 보이면 ‘리버’가 들어가고, 숲이 가까우면 ‘포레스트’가 들어간다. 도심이 가깝다 싶으면 ‘센트럴’이나 ‘시티’가, 공원이 가까우면 ‘파크’가 들어간다.

지역의 범위는 사라졌다. 아파트 단지명으로만 생각하면 ‘서면’ ‘센텀’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전 명칭에 익숙한 시어머니들이 이름을 알려주어도 못 찾을 수밖에….

최근 부산 내 단지들은 컨소시엄 형태로 단지를 지으면서 이름은 좀 더 복잡해진다. 양정자이더샵sk뷰는 3개 건설사의 브랜드가 다 붙었다. 아직 정확하게 명칭을 말한 이를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양정자이더샵sk뷰는 지역 이름이 들어가 기본 공식을 따른 편이다. 부산 연제구에 입주 예정인 레이카운티 단지명은 포르투갈어로 ‘제왕, 군주’를 뜻하는 레이(Rei)와 행정구역 표현인 카운티(County)의 합성어로, 대규모 고급주거단지를 의미한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비슷한 현상이기도 하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는 재건축을 하며 ‘올림픽파크포레온’으로 바뀌었다. ‘포레온(ForeOn)’은 숲을 의미하는 Forest와 On, 溫(따듯할 온), 穩(평온할 온)의 합성어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는 재건축 후 헬리오시티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는 빛을 뜻하는 헬리오(helio)와 도시(city)를 합성한 ‘빛의 도시’란 뜻이다.

여전히 우리 입에는 올림픽파크포레온보다 둔촌주공이 더 많이 언급된다. 직관적으로 둔촌주공이 떠오르기 때문일까. 한편으로는 가락시영아파트보다는 헬리오시티가 서서히 익숙해지는 것을 보니 ‘시간이 약’인가 싶기도 하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조합 관계자들과 공청회를 열고 알기 쉽고 부르기 쉬운 아파트 이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마을의 이름을 정하는 것인데 어떤 결론이 날지 궁금하다. 특색있고 알기 쉬운 아파트의 이름, 여기에 아파트의 가치도 높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여전히 시어머니가 집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