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월급 받고, 세금 내고… 교실에서 살아 있는 경제 배워요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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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초 옥효진 교사 ‘지우개나라’

급식배식원·환경미화원 등 다양
건강보험료로 돌봄 서비스 받아
예금 도입하고 주식활동도 해
작은 집안일부터 임금 지급을
격려·칭찬 의미 용돈은 금물

학생들이 세금을 내고 실수령액이 적힌 월급을 받는 교실이 있다. 부산 해운대구 송수초 6학년 7반 ‘지우개 나라’에서 예금, 이자, 신용등급 같은 단어는 학생들에게 더 이상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이재찬 기자 chan@ 학생들이 세금을 내고 실수령액이 적힌 월급을 받는 교실이 있다. 부산 해운대구 송수초 6학년 7반 ‘지우개 나라’에서 예금, 이자, 신용등급 같은 단어는 학생들에게 더 이상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이재찬 기자 chan@

‘우리 아이는 돈 개념이 없어서…’, ‘용돈을 주는 대로 다 쓰는데 어떻게 저축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또래 친구들과 주전부리를 사 먹고 직접 물건을 사겠다며 용돈을 찾는다. 부모는 얼마를 줘야 하고 어떻게 관리하는 법을 교육해야할지 고민한다. 아이 경제 교육의 왕도는 없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실 수업을 통해 경제 관념 갖춘 아이 키우기의 힌트를 얻어보자.


■실수령액부터 신용등급까지 ‘지우개 나라’

“오늘은 여러분이 기다리던 월급날입니다.”

지난 11일 해운대구 송수초 6학년 7반 교실 5교시. 월급을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이 은행원 앞에 줄을 선다. 월급 단위는 ‘미소’. 미소는 6학년 7반 지우개 나라(‘지혜로운 우리는 개성 넘치는 아이들’의 줄임말) 화폐다. 학생 24명은 지우개 나라에서 저마다 가지고 있다. 급식 시간 급식차를 가지고 와 배식을 책임지는 급식 배식원부터 청소 도구함을 관리하는 환경미화원, 월급을 확인하고 예금 만기일을 알려주는 은행원까지 직업의 종류는 10가지가 넘는다. 직업은 학생들이 회의를 통해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급식 배식원은 지우개 나라에서 가장 고액 월급인 260 미소를 받는다. 상대적으로 급식 시간 친구들을 도와야 해 인기가 없고 힘들기에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다. 한 달에 두 번 직업에 따라 월급이 차등 지급된다.

지우개 나라 학생들이 받은 월급으로 구입할 물건 가격표를 보는 모습. 이재찬 기자 chan@ 지우개 나라 학생들이 받은 월급으로 구입할 물건 가격표를 보는 모습. 이재찬 기자 chan@

이날 받은 월급의 25%는 소득세로 지우개 나라 세금으로 모인다. 지우개 나라 시민들이 받는 월급 명세서에는 다양한 세금 항목이 적혀 있다. 소득세 25%, 자리 임대료 45 미소, 건강보험료 10 미소, 전기요금 3 미소 등이 월급에서 공제된다. 각종 공제 항목 끝에 ‘실수령액’이 적혀 있다. 취업하면서 알게 되는 ‘실수령액’이라는 단어를 이 학생들은 초등 6학년 때 매달 접한다. 건강보험료를 지불했기에 반에서 몸이 아플 경우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학생들이 급식을 남길 경우 음식물 쓰레기 무게를 계산해 거둔 세금에서 처리 비용이 발생한다. 나라의 세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은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다. 신학기가 시작하고 이날 두 번째 월급 210 미소를 받은 지우개 나라 경제부총리 권예한 군은 “반에서 회계 장부를 관리하는 공무원이라 월급이 적지만 세금을 내고 화폐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어 경제부총리 자리가 재밌다”며 웃어 보였다.

숙제, 지각, 가정 통신문 가정 전달 등 유무는 신용 등급으로 관리된다. 예를 들어 일기를 쓰지 않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을 경우 신용 등급 점수가 감점된다. 학급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과 숙제 제출 여부, 문서 관리 등의 항목이 통계청에 집계돼 신용 등급이 나오는 방식이다. 신용 등급은 학급 화폐의 예금 이자율에 영향을 준다. 금리표에 따라 4주 예금 8%이고 6주 예금은 15%의 이자를 받는다. 신용 등급은 갖고 싶은 직업을 신청할 때 자격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예금, 신용 등급 등 어려운 경제 개념이 교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우개 나라의 월급 기입장. 이재찬 기자 chan@ 지우개 나라의 월급 기입장. 이재찬 기자 chan@

■딱딱한 경제 이야기 대신 직접 해보자

지우개 나라의 대통령 옥효진 교사는 5년 전부터 매해 ‘경제 나라’를 운영하고 있다. 옥 교사는 “교사가 되고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경제에 대해 나 자신부터 너무 모르는 것 같았고 생활에 필요한 경제 지식을 학교에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경제 교실의 시작 계기를 밝혔다.

옥 교사의 교실은 해마다 발전했다. 옥 교사의 첫 교실은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소비하고 저축하는 교실이었다. 노동력을 통해 임금을 받는 것이 경제 교육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월급을 저축하기 위해 학급에 은행 예금이 도입됐다.

교실은 진화해 주식 활동도 이뤄진다. 옥 교사의 몸무게를 매주 측정해 몸무게 변화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이 투자하는 식이다. “선생님이 주말에 제주도 여행을 갈 거예요”라고 주말 계획을 밝히면 ‘제주도에 가면 선생님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것’이라고 예상해 몸무게 상승에 투자하는 학생도 있고 ‘제주도를 가면 많이 걸을테니 몸무게 줄어들 것’이라며 투자금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

옥 교사는 신학기 시작 후 2개월 간은 월급과 예금의 개념 등 근로소득과 저축의 개념을 익히고 학생들이 익숙해질 즈음 주식 투자,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사업 아이템 구상 등을 교실에 추가한다.

지우개 나라 학생이 학급 화폐 미소를 이용해 물건을 구매하는 모습. 이재찬 기자 chan@ 지우개 나라 학생이 학급 화폐 미소를 이용해 물건을 구매하는 모습. 이재찬 기자 chan@

옥 교사는 가정에서도 이 같은 형태의 경제 교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부모님의 몸무게를 통해 투자하거나 어떤 활동을 했을 때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의 교육도 쉬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이 단순히 ‘엄마가 용돈을 보관해줄게’ 같은 식의 교육이 아닌 ‘엄마한테 용돈을 맡기면 몇 주 뒤 이자를 붙여서 줄게’같은 식의 변화만으로도 이자 개념 설명은 충분하다.

다만, 특정 활동을 했을 때 격려나 칭찬의 의미로 용돈을 주거나 훈계의 용도로 용돈을 감하거나 빼는 경제 교육은 지양해야 한다. 옥 교사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 용돈을 감하거나 더 주는 경우 아이가 ‘이거 하면 얼마줄 건데요?’같은 반응이 나오면 경제 교육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며 “반에서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반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더라도 신용 등급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직업에 따라 주어지는 임금이 더 지급되거나 덜 지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방 청소, 신발 정리 같은 작은 집안 일을 부여한 뒤 임금을 정해진 날 줘보는 것은 어떨까. 받은 용돈 일부를 한 달 이상 부모에게 맡기면 이자를 지급해보는 건 어떨까. 격려, 칭찬의 용돈 대신 임금의 개념, 예금에 대한 이자의 설명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옥 교사는 “용돈의 의미, 노동의 댓가 등을 익히는 정도의 가벼운 교육만 진행돼도 학생들이 돈을 대하는 눈빛, 관심도가 달라지는 만큼 조급하기보다는 천천히 하나씩 하길 추천한다”고 웃어 보였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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