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균형발전 싫으면 떠나라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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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수도권 규제 완화 생산성 높여야”
KDI 부원장 주장 비수도권 허탈

지방국립대 간판 바꿔 달지만
외국인 유학생까지 서울 몰려

프랑스, 분권형 개헌 성공 사례
‘살기 좋은 지방시대’ 힘 모아야

얼마 전에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교수를 했던 분이 대학 시절 부산에 왔다 가면 친구들이 “시골 잘 다녀왔냐”고 말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은 부산을 한 번도 시골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서울 친구들은 서울이 아닌 지방은 죄다 시골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지방 출신들은 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서울 사람들 인식도 변하지 않았을까. 부산을 대놓고 시골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서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까지 나와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 두 사람의 연이은 발언이 매우 실망스럽다. 첫 번째가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고영선 부원장이다. 고 부원장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간담회에 발제자로 나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지역균형발전과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심지어 “불필요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각 부문 이해 집단들이 국익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방은 모든 분야에서 서울에 종속된 내부 식민지라는 평가가 10년 전부터 나왔는데, 그것도 모자라 더 내놓으라니.


또 한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이다. 당 정책을 심의·입안하는 정책위의장이 되지 않았다면, 2010년 부산시장에 출마해 “부산을 바꿔 서울을 능가하는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라고 약속하지 않았으면 또 모르겠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어떻게 산업은행 부산 이전 철회 운동을 여전히 주도할 수가 있는가. 내년 총선을 겨냥해 부산 발전 방안으로 내놓은 사직야구장을 돔 구장으로 건설하자는 제안도 그렇다. 지난달 말 부산시는 ‘개방형(하늘이 뚫려 있는 형태의 구장)’으로 사직야구장 재건축 방향을 확정했다. 부산에 관심이 없어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던져 보는 거니 상관이 없다는 뜻인가.

당신들은 작금의 수도권 전세사기와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골드라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전세사기는 수도권이 진원지로 발생 건수도 압도적으로 많다. 주택 1139채를 소유하고 170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빌라왕’ 사건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생했다. 주택 2700채를 보유하고 전세보증금 266억 원을 가로챈 ‘건축왕’은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활동했다. 경기도~김포공항역을 잇는 김포도시철도에는 출근길 압사 사고까지 우려되지만, 버스를 증편해도 해결이 안 된다. 지하철 연장이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신설이 현실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그 결과 더 많은 역세권 아파트가 들어서고, 더 많은 신규 인구가 유입되어, 다시 지옥철 문제가 불거져도 괜찮은가.

벚꽃이 졌다. 부경대·해양대·창원대 등 학생 수 감소로 존폐 기로에 처한 비수도권 13개 국립대학은 교명 앞에 ‘국립’을 붙이는 개명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와 같은 국립대라고 강조해 신입생 충원에서 인지도를 높여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생존 투쟁이다. 상당수 사립대는 이미 자체 발전 기반을 잃은 상태다. 외국인 유학생마저 약 60%가 수도권에 있을 정도로 수도권 쏠림 현상은 이미 심해졌다. 학교 간판을 바꿔 달고 장학금을 두둑하게 주면 ‘인서울’이란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수도를 절대 허용하지 말고 정부를 각 도시에 번갈아 자리 잡게 하라. 영토에 골고루 사람들이 살게 하고, 어디서나 똑같은 권리를 누리도록 하며, 도처에 풍요의 활기를 나눠 주라. 그렇게 하면 국가는 최대한 강력하고 가장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 도시 성벽은 오직 시골집들의 잔해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명심하라. 수도에 궁궐이 세워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라 전체가 오두막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듯하다.” 1762년에 출판되어 프랑스 혁명의 밑받침이 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뜻밖에도 이처럼 ‘지방분권’ 문제가 나온다. 루소가 살던 당시의 프랑스도 철저하게 수도인 파리 중심 국가였다.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대통령 시절인 1982년에 지방분권법이 제정되었고, 시라크 대통령 시절인 2003년 지방분권 개헌이 이루어져 마침내 루소의 소망이 실현되었다.

25일 ‘법의 날’을 보내며 이전 정부에서 추진하다 무산된 지방분권 개헌이 떠오른다. 그때 지방분권형 개헌이 이뤄졌다면 지방의 형편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아무튼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 역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다. 지역균형발전이 싫다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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