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와 함께 살아나는 중국의 ‘항미원조전쟁' 기억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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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백지윤

<항미원조>. 창비 제공 <항미원조>. 창비 제공

<항미원조>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인가를 풀어낸다. 부제가 ‘중국인들의 한국전쟁’이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듯이 중국에서 애국주의와 함께 항미원조의 기억이 현재적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전쟁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휴전 체제 아래 아직 분단돼 있고, 중국에서 한국전쟁의 기억이 비로소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1950년 10월 25일부터 2년 9개월 동안이었다. 연인원 240만 명이 참전했고, 1953년 5월에는 135만 명이 최대 규모로 주둔 중이었다. 한국군 장군 백선엽에 따르면 한국전쟁 처음 3개월을 제외하면 북한 인민군은 중공군의 향도에 불과했다. 한국전쟁 대부분이 사실상 중공군과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공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희미하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전쟁의 기억은 억압돼 있었다. ‘냉전이 누른 냉전의 기억’이었는데 미국의 한국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은 현대의 어떤 전쟁보다 지연된 기억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 70년간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의 기억을 미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관리해왔다는 것이다. 10주년인 1960년에만 매우 거창하고 떠들썩하게 기념했다. 이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30주년인 1980년에는 아예 기념식조차 열리지 않았다. 1979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기억’을 관리했던 셈이다. 미·중의 적대적 공조체제가 유지됐던 것이다.

그런데 70주년을 맞던 2020년은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의 정치적 상징성이 전면적으로 귀환한 해였다고 한다. 1960년처럼 떠들썩하게 기념한 것이다. 미·중 갈등에 반미정서가 팽배하면서 70년 전의 전쟁 기억을 소환한 것이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담화는 “어떤 국가든 군대든 시대 흐름에 역행하여 침략을 확장한다면 반드시 머리가 깨어져 피를 흘릴 것”이라며 거친 경고를 쏟아냈다.

중국에서 거의 금기사항이던 항미원조전쟁은 2000년 이후 TV 드라마 전성시대를 맞으면서 대중사회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2010년 한국전쟁 때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을 그린 ‘마오 안잉’ 34부작은 굉장히 전향적이었고, 2016년 ‘펑 더 화이 원수’ 36부작은 대단한 문제작이었다. 마오쩌둥에게 숙청당한 펑에 대한 드라마가 가능했던 것은 펑이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도 결국 검열 수위를 넘지 못하고 원래 46부작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36부로 갑자기 중도 하차했다고 한다.

2020년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에 와서는 ‘펑 더 화이 원수’ 같은 이전 드라마의 균열 부분을 완전히 걷어내고 ‘애국주의’ ‘혁명영웅주의’로 내달으면서 항미원조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부각시켰다고 한다. 2020년에 와서는 기술 자본 스케일 면에서 대작을 추구하면서 ‘펑 더 화이 원수’에 내재해 있던 이른바 ‘질문’을 깡그리 없앴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도 여전히 미완의 질문이지만, 적으로 싸웠던 그들에게도 이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망각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뒤늦게 찾아온 이해와 대화의 기회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남북 분단 상황 속의 한국전쟁도, 나아가 동아시아 속의 한국전쟁도 마저 알지 못하는데 우리의 기억에 부재했던 타자를 발견하고 그 이질적 기억 속으로 침투하는 작은 오솔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지윤 지음/창비/388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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