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로 안전대책 꼭 이행을” 거리로 나선 청동초등 학부모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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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야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100여 명 검은 옷 입고 ‘침묵 시위’
미온적 행정 벌인 영도구 질타
“진정성 있는 태도·사과가 우선”

부산 영도구 등굣길 참사와 관련해 영도구 청동초등 학부모들이 9일 오후 영도구청 앞에서 안전한 통학로 조성을 촉구하며 고 황예서 양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부산 영도구 등굣길 참사와 관련해 영도구 청동초등 학부모들이 9일 오후 영도구청 앞에서 안전한 통학로 조성을 촉구하며 고 황예서 양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부산 영도구 등굣길 참사(부산일보 5월 1일 자 1면 등 보도)가 발생한 지 12일 만에 청동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먼저 떠난 아이를 눈물로 추모하면서 각 기관이 마련한 안전 통학로 조성 대책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을 요청했다.

9일 오후 1시 30분께 영도구청 앞 광장.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한 학부모와 주민 100여 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지난달 비극적 참사를 당한 고 황예서(10) 양의 추모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집회 시작 전부터 미리 챙겨온 여러 장의 손수건을 서로 나눠주며 눈물을 훔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100명 넘는 인원이 모였지만 집회는 고요했다. 소음 민원 등을 고려해 침묵시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간혹 바람 소리와 함께 미처 숨기지 못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군중 뒤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학부모의 모습도 보였다. 그 곁에서 “언니 왜 그래”라며 위로하던 3~4명의 학부모도 이윽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토해냈다.

이어 오후 2시께 청동초등 학부모회는 사고 위험 예방에 미온적이었던 구청과 유관 기관들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학부모회는 이날 입장문에서 충분한 안전 대책도 없이 초등학교 인근에 제조업체가 밀집하게 방치한 것과, 이에 대한 사고 위험을 알리는 경고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묵인했던 각 기관에 책임을 물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이 집회 목적은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통학로 확보와 주체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하기 위함이다”고 밝혔다.

이들이 이날 집회에 나선 것은 참사로 희생된 예서 양을 추모하는 분위기를 이어 나가면서 이번 참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각 기관의 대책 이행이 중요하지만,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참사 이후 부산시, 영도구청, 경찰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통학로 안전 확보를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불법 주정차 단속 CCTV, 차량용 펜스 등이다. 안전을 위해 보·차도 구분 없는 일부 청동초등 통학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는 것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 대책들은 필연적으로 인근 주민들의 민원을 야기할 수 있어, 추진 과정에서 적잖은 반발도 예상된다.

집회 참여자들은 이번 참사에 대한 구청의 진정성 있는 사죄 목소리가 아직 없다고 지적했다. 구민을 보호할 책임을 저버린 구청 때문에 참사가 발생한 만큼 유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가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번 참사로 구청이 구민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신뢰 자체가 훼손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청동초등 학부모 송희련 씨는 “이번 참사에 책임이 있는 구청이 예서 유가족에 어떤 사과를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며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로 모든 학부모도 항상 불안에 시달리는 만큼 구청에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학부모들은 예서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공통으로 전했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예서 양을 지켜주지 못한 일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특히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애끓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9살 아이를 청동초에 보내고 있다는 김정운 씨는 “통학로에 사고 위험이 있었던 것을 알면서도 내 아이에게만 조심하라고 말했다”며 “만약 더 적극적으로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집회 현장을 찾은 송양호 영도구 부구청장은 “이번 참사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고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청동초등뿐만 아니라 영도구 내 다른 초등학교까지 안전 대책을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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