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폐허에서 응시하기
영화평론가
500만 관객 ‘스즈메의 문단속’
재난 서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억·추모 행위가 유일한 열쇠
사람들 도움 받으며 과거 극복
‘슬램덩크’로 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벌써 500만 명 넘게 관람한 ‘스즈메의 문단속’. 도대체 이 영화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 극장으로 향했다. ‘너의 이름은’(2017) ‘날씨의 아이’(2019)에 이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재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영화. 웅장한 서사와 감동, 서정적인 영상미까지 충분히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일본 규슈의 작은 마을. 이모와 살고 있는 17살 소녀 ‘스즈메’는 어느 날 아침 폐허의 문을 찾는 대학생 ‘소타’와 우연히 마주친다. 스즈메는 처음 만났음에도 어딘지 낯이 익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그의 뒤를 따라 산속 폐허가 된 마을까지 무턱대고 찾아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 소타는 보이지 않고, 그곳엔 낡은 문만 덩그러니 서 있다. 호기심에 문을 열어본 스즈메. 이후 스즈메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실 여고생이 일본(세상)을 구한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스즈메의 문단속’에 매료되는 이유는 아름다운 영상뿐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 보인다. 먼저 영화는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 등지의 버려진 땅들에서 벌어지는 재난 서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간다. 재난을 봉인하기 위해서는 폐허가 된 마을의 문(門)을 찾아 닫아야 하는데, 이때 문만 찾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문의 열쇠 구멍이 필요하며, 이 구멍은 ‘기억’을 해야만 생긴다. 스즈메와 소타는 재난을 봉인하기에 앞서 버려진 땅에 머물렀던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위를 한다. 사라진 것을 기억하는 게 먼저이고, 그게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영화가 진정 보여주려는 건 2011년 3월 11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감독은 정확히 명시하진 않지만, 스즈메의 고향이 이와테현임을 짐작게 한다. 스즈메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고, 그 기억이 고통스러워 스스로 기억을 봉인했다. 기억이 꿈이나 현실에 수시로 불려 와 고통스럽게 해도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스즈메가 재난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면서 자신이 닫아둔 기억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즉 영화는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미래 또한 없음을 알리고 있다.
스즈메가 혼자 과거를 극복할 수 있는 건 불가능하다.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봤던 것처럼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스즈메는 재난의 힘줄기인 ‘미나미’를 막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힘을 얻고, 재난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얻어간다. 더불어 떠난 이들을 애도하고, 남은 이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야 함을 배우게 된다. 슬픔을 마음속에 모아두기만 하던 소녀가 사람들을 만나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는 ‘문’이다. 영화 속 문은 들어가거나 나가는 내부나 외부의 의미를 뜻하지 않는다. 그곳은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사이’의 공간이다. 사이를 이해할 때 비로소 이 영화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어 보인다. 즉 ‘스즈메의 문단속’은 문을 닫아야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데, 또 한편으론 꼭꼭 잠가뒀던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문을 닫아야 재난이 오지 않는 게 아니라, 문을 열어야만 볼 수 있는 세상도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재난은 언제 어디서든 들이닥쳐 삶을 바꿔버리는 일이 되어 버렸다. 영화에는 재난을 대하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담겨 있다. 만성이 된 재난 앞에서 수시로 울리는 재난 경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 재난 앞에선 무기력한 모습 등. 영화를 보는 내내 재난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