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마약 중독의 첫걸음, 약물 오남용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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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에 둔감해진 아이들, 마약까지 손댄다

 청소년 마약사범 10년 새 12배
 중학생이 용돈 모아 구입하기도
 윤 대통령 “마약 척결” 선언에도
 이미 사회 구석구석 파고들어
 약물 의존 습관 마약 중독 초래
 오남용 예방교육 시스템 절실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 문제와 마약 중독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최창욱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장. 정대현 기자 jhyun@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 문제와 마약 중독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최창욱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장. 정대현 기자 jhyun@

목하 나라 전체가 마약 때문에 난리다. 대통령은 “국가를 좀먹는 마약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으르고, 정부는 정부대로 검찰·경찰·관세청 합동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꾸린다며 부산하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약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이 특히 문제다. 아이들이 마약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14살짜리 중학생이 용돈을 모아 필로폰을 구입하는 세상이다. 이런 형편에 유달리 바쁜 사람이 있다. 최창욱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장이다. 기관, 기업, 학교 등에서 쏟아지는 마약 강의 요청을 최 본부장은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 마약 대책은 청소년에게로 무게중심이 옮아가야 한다는 게 그가 주창하는 바다. 직접 만나 그 까닭을 묻고 들었다.

■급증하는 청소년 마약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38명이던 청소년 마약사범이 2022년에는 481명으로 집계됐다. 10년 새 무려 12.7배나 증가한 것이다. 전체 마약사범 수가 같은 기간 9255명에서 1만 8395명으로 2배 증가한 사실과 비교하면 청소년 마약범죄가 얼마나 심각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마약범죄의 암수율이 28.57배라고 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마약범죄가 드러난 것보다 30배 가까이나 많다는 의미지요. 수사 당국에 의해 압수된 마약이 2012년 50.1kg에서 2022년 804.5kg으로 급격히 늘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마약 범죄자는 수십만 명이고, 청소년도 최소한 1만 명은 넘는다고 추정할 수 있겠지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평소 약물에 너무 둔감해진 게 원인입니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약물의 폐해를 설명해 주지 않아요. 학교에서도 금연 교육은 있어도 약물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청소년 마약범죄 확산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너무 쉽게 구하는 약물

마약이라면 흔히 아편이나 헤로인, 코카인, 필로폰처럼 무시무시한 것들을 떠올리지만, 최 본부장의 관점에선 마약은 그런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신경안정제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 본드나 부탄가스 같은 흡입제, 다이어트약(비만치료제), 공부 잘하게 하는 약(ADHD 치료제), 수면제도 마약과 같은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약물들은 알려진 마약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아프다는 핑계로 병원에서 처방받아 공공연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마약 중독으로 가는 시작점일 수 있다.

“마약류는 개인을 넘어 가정과 사회에 해를 끼치는 약물이라고 WHO(세계보건기구)가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정의한다면,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물질이라고 봅니다. 호기심, 치료 등 이유를 불문하고 단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파멸하는 무서운 물질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약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쉽게 구할 수도 있고요. 비만치료제나 주의력을 높이기 위한 ADHD약은 마약류로 분류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복용합니다. 심지어 학부모가 구해 주는 경우도 있어요. 중독성이 있는 에너지드링크는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지요. 이런 일들이 결국 약물 오남용을 조장하고 결국은 마약 중독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하지만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육교를 이용하듯, 약은 꼭 필요할 때 용법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약물 오남용이 마약범죄로 이어지는 사회적 현상은 반드시 개선돼야 할 과제입니다.”

■‘좀비 마약’ 펜타닐

청소년들의 약물 오남용 실태는 사실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진통제인 타이레놀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은 연령대가 10대라는 보고도 있다. 청소년들에게 약물을 찾는 이유를 물어보면, 실제로 아파서라기보다 친구의 권유나 스트레스 해소 때문이라는 대답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이런 행태는 약물을 습관적으로 찾게 하는 원인이 되고 부작용의 위험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잠을 잘 자기 위해 찾는 졸피뎀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복용자의 6~7%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에는 진통제인 펜타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펜타닐은 치사량이 겨우 2mg일 정도로 위험한 약인데도 통증을 호소하면 대부분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다. 지난해에는 부산·경남의 병원과 약국을 돌며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판매·투약한 10대 41명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펜타닐은 소량인 패치로 처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기 암 환자도 사흘에 한 번만 쓰고 또 같은 자리에 연속으로 붙이는 것을 금할 정도로 위험합니다. 미국에선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동안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21만 명에 달합니다. 펜타닐은 또 쉽게 중독에 빠질 수도 있고, 중독되면 뇌 일부가 손상돼 마치 좀비처럼 걷는다고 해서 ‘좀비 마약’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펜타닐 중독자들은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처방받는, 소위 ‘의료 쇼핑’을 통해 펜타닐 패치를 구입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약물 오·남용 교육부터

청소년기에는 또래 문화의 영향이 매우 큰 법이다. 또래 집단에서 소외받지 않기 위해 친구의 약물 권유를 거부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도 한다. 학업으로 인한 고통을 잊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기도 하고, 정서적 민감도가 높은 때라 감정 기복에 따라 약물 남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텔레그램이나 트위터, 다크웹 등을 통하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약물을 구할 수 있는 환경도 문제다. 청소년들의 경각심은 더없이 무뎌져 있는데 약물, 나아가 마약을 구할 데는 주변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약물에 대한 사전 교육이 더욱 절실하게 여겨진다.

“마약 중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국민 보건의 문제입니다. 청소년에게서는 그 책임이 더 크다고 하겠지요. 마약사범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도 필요하지만, 잠재적인 중독자를 양산하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약물 오남용에 노출된 청소년들은 가까운 미래에 심각한 마약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연결고리를 끊어 줘야 합니다. 청소년 약물 오남용예방교육을 확대 시행하는 시스템 마련이 매우 시급하고, 아이들만이 아닌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도 동시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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