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구(水球)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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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 관장

바다와 관련된 전통신앙과 의례를 소개한 국립해양박물관의 기획전시 ‘별별 바다신’. 이재찬 기자 chan@ 바다와 관련된 전통신앙과 의례를 소개한 국립해양박물관의 기획전시 ‘별별 바다신’. 이재찬 기자 chan@

5월 10일은 바다에 해조류나 해초를 심는 ‘바다식목일’이고, 오는 5월 31일은 국가적 바다 기념일인 ‘바다의날’이다. 이즈음, 전국 곳곳에서 바다 관련 행사가 열린다. 1년 내내 땅만 바라보다가 이렇게라도 바다에 관심 가져 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유를 따질 것도 없이 바다를 멀리하고 갯가 것들을 하대해 온 땅 중심 사고 탓이다.

사실, 인류에게 바다는 늘 두렵고 불안한 위험천만한 공간이었다. 근대 이전, 항구를 떠났던 돛단배 열 척 중 아홉 척은 돌아오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단 한 척만이 귀항(歸港)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만큼 바닷길은 위험과 고난의 험로였기 때문에, 무사 항해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바다식목일·바다의날 있는 5월

땅 중심의 사고, 전환해야 할 때

‘지구’ 고집할 게 아니라 ‘수구’ 마땅

바다가 곧 치유이고 살림·생명

지속가능 문화, 해양에서 찾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바다에서 생선과 해초 그리고 소금을 얻어 생명을 영위해 왔다. 배의 발명은 항해를 통한 항구 건설을 촉진해 해양문명을 만들었다. 해항도시, 해양금융, 해양산업, 해양관광 등이 그 결과다.

인류가 만들어 온 해양문명을 총체적으로 수집, 연구, 전시, 교육하는 정점에 국립해양박물관이 위치한다면 과언일까? 개관 11주년 만에 연 관객 천만 명을 돌파한 국립해양박물관은 부산에 입지하고 있지만 세계와 소통하며 세계적 해양인문·문화·예술 공간으로 성장해 왔다.

4월 25일 상하이의 중국항해박물관에서 〈해진백품(海珍百品)〉 전시 개막식이 열렸다. 2016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열렸던 〈해양 명품 100선〉 전시의 상하이 버전이다. 이미지 전시라 아쉽기는 하지만,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명품 유물을 상하이 시민들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경색된 한·중 관계의 정치현실을 놓고 볼 때 민간 차원의 인문교류가 한·중 간 국제정치적 냉기를 녹여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런 것이 인문학의 사명이자 역할이기 때문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은 유럽과의 교류협력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바다에 대해 소극적 관조에 머물렀던 동아시아에 비해 능동적 도구적 인식으로 해양을 먼저 발명했던 유럽의 역사와 철학을 벤치마킹하는 동시에 극복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북극탐험과 선진적 어업, 네덜란드의 해양금융업,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해양영토 확장 등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우리 나름의 해양인식과 해양철학을 창안해야 한다.

바다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일상화를 위해 ‘수구(水球) 캠페인’을 제안한다. 지구라 불러온 블루 플래닛(Blue Planet)을 지금부터는 ‘수구’라 부르자는 얘기다. 지구가 더 이상 땅 지(地)자 지구가 아니라 물 수(水)자 ‘수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은하계 행성 중 물을 가진 유일한 행성이 지구다. 지구에 물이 없었다면 인류를 비롯한 생명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순환하는 물 생태계의 종착지가 바로 바다다. “바다가 온 강물을 다 받아 안는다”는 ‘해납백천(海納百川)’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그런 만큼 우리는 더 이상 지구를 고집할 일이 아니라 ‘수구’를 호출해야 하지 않을까? 물의 어머니가 ‘바다’니 차라리 ‘해구(海球)’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썼던 카렌 브릭슨이 말했다. “모든 치유하는 것들은 짠맛이다. 땀과 눈물과 바닷물처럼!” 바다가 곧 치유고 살림이고 생명임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명제다. 〈아바타2 물의길〉에서 제임스 카메룬은 “물은 모든 걸 하나로 연결해요”라는 대사를 제시했다. 물이 좌우는 물론 상하로도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얘기다. 인간의 욕망이 자행하는 파괴와 약탈이 아니라 치유, 생명, 살림의 화해와 협력, 공감과 공생의 공간임을 역설한다. 이것이 인류가 만들어 온 ‘해양문명과 해양성’의 핵심이다.

인류의 미래를 바다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인문학적 성찰로 이어진다면, 해양쓰레기, 미세플라스틱, 플라스틱 아일랜드, 해양생태계 파괴, 방사능오염수 방류 같은 전 지구적 리스크가 대폭 줄어들지 않을까? 이것이 ‘수구(水球) 인문학’의 사명이자 해양의 미래다! 이것이 육지적 사고에 점철된 약탈경제를 뛰어넘어 지속가능 문화를 가능케 하는 해양적 사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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