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리포트] “출생률 꼴찌 나라에서?”… 외신, 한국 ‘노키즈존’ 논란 해부
용혜인 “노키즈존 없애자” 제안
미국 양대 언론사 집중 조명해
한국의 어린이 차별 논쟁 소개
“업주 권리” 긍정적 시각 전하며
“아이 2등 시민 취급·인권침해
육아 고통·저출생 악순환” 지적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23개월 아들을 안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공공장소에 어린이 출입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키즈존’을 금지하고 어린이 동반 가족이 박물관·미술관 등에 줄 서지 않고 입장하는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이에 외신도 한국의 노키즈존 논란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외신은 이번 보도에서 대표적인 저출생 국가 한국에 넘쳐 나는 노키즈존이 출생률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담아냈다.
■미 언론도 ‘노키즈존’ 주목
미국 양대 신문인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는 이달 들어 한국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노키즈존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나란히 게재했다. WP는 지난 12일 ‘아이들을 식당에 데리고 갈 수 없다면 그것은 차별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용 의원의 기자회견과 노키즈존을 규제하려는 제주도의회 움직임을 보도했다. NYT 또한 지난 16일 ‘더 많은 아기를 원하는 한국, 단 몇몇 장소만 빼고’ 기사를 게재했다.
WP는 한국의 대표 관광지인 제주도를 언급하면서 이 섬에만 무려 500여 개의 노키즈존이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민간 업소뿐만 아니라 공공시설인 서울의 국립중앙도서관도 만 16세 이하는 출입할 수 없는 노키즈존이라고 전했다. NYT는 또 노키즈존 관련 지난해 발표된 한국리서치 설문조사를 인용하며 73%의 응답자가 해당 정책을 지지했고, 반대는 18%에 그쳤다고 썼다.
포틀랜드주립대학의 우혜영 사회학과 교수는 WP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전부터 식당에서 부모들이 기저귀를 버리고 가거나 아이들이 뛰어놀게 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는 소셜 미디어 보도와 관련해 노키즈존이 한국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WP는 업주가 업소의 분위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라는 시각도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NYT는 업소가 노키즈존을 두는 이유로 아이들이 다치는 것은 물론 재산 피해를 예방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 나이에 따라 공공장소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견해도 나온다. 럿거스대학의 존 월 아동학과 교수는 WP에 “아동 출입 금지가 아닌 실내에서 벌어지는 시끄럽고 성가신 행위를 제지해야 한다. 식당에서 소리 지르는 술 취한 성인은 울고 있는 유아보다 훨씬 더 방해가 된다”며 “노키즈존이 어린이를 2등 시민으로 간주하고 사회적 교류에 부적합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출생률 더 떨어질라
두 신문은 노키즈존 논란이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일본항공과 말레이시아항공, 인도의 인디고를 포함한 몇몇 항공사는 승객들이 어린아이로부터 떨어진 좌석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만들었다. 영국 의회의 스텔라 크리시 의원은 용 의원처럼 2021년에 아기를 런던 의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홀에 데려왔다는 이유로 비난받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호주와 미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는 어린이들이 정부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한다고 NYT는 설명했다. 2018년 미국의 태미 워덕스 상원의원은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 지명자에 대한 인준 표결에 참석하기 위해 출산 휴가 중 둘째 딸을 안고 등원했다. 미 연방 하원은 의사당 내 어린이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으나 이보다 엄격한 규정이 적용돼 온 상원은 의사당 내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해 왔다.
이들 신문은 한국의 노키즈존 논란이 다른 나라보다 더 특별하다고 지적한다. 2022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생률은 0.78명으로 세계 꼴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WP는 이런 상황에서 노키즈존을 두는 것은 오히려 한국의 출생률을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공과대학교의 하이케 샨젤 관광학과 교수는 WP에 “더 많은 노키즈존을 허용하는 일은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는 소수의 가족들이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신중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도 같은 신문에 “(노키즈존은)여성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한다는 생각을 강화함으로써 육아에 대한 성별의 역할 기대를 존속시킨다”면서 “아이들의 공공장소 출입을 제한하면서 양육이 더 어려워진 측면도 있고,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단념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