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역사로 본 부산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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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한국해양대 항해융합학부· 대학원 해양역사문화전공 교수

1911년부터 본격 축항공사
1979년 현대적 컨 항만 변신
고층빌딩만 즐비한 북항 안 돼
해양과학관 기획전시관 등 절실

항만은 배를 대는 ‘항(港)’과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만(灣)’의 결합어로, 말 그대로 인공 구조물과 자연 형성물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만을 영어로 표기해야 할 경우 ‘port’로 써야 할지 ‘harbour’로 써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부산항 주변의 도로나 이정표를 보면, Busan Port와 Busan Harbour가 병용되어 있다. port는 문을 뜻하는 라틴어 ‘porta’에서 유래한 말로, 로마인들이 성벽을 지을 곳에 줄을 그어 넘나들지 못하게 하고, 성문 예정지로만 드나들게 했던 데서 유래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portal’(관문)이라는 말도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다. harbour는 게르만어의 ‘heriberga’(숙영지, 피난항)에서 유래한 말로 군대가 숙영하거나 배가 피난할 수 있는 천혜의 포구를 의미했다. 따라서 항만은 port와 harbour가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산항을 영어로 표기할 때 천연성이 주목적일 때는 Busan Harbour, 인공성이 주목적일 때는 Busan Port로 쓰는 게 맞겠다.



역사적으로 부산은 동래 외곽의 자그마한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시대 전 시기에 걸쳐 부산은 용당포나 다대포와 같이 부산포였다. 왜와 가까운 부산포에는 부산진이 설치되었고, 왜인들이 쌀을 반출하는 왜관이 있었으니 배를 대고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인공축조물도 설치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공축조물이 천연의 포구 기능과 목적을 넘어서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부산포가 ‘항’으로 첫걸음을 뗀 것은 개항이 이루어지고 난 뒤 3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선박 입출항이 증가하고, 선박 크기가 커져감에 따라 부산항 매립지 조성, 철도 잔교 축조 공사가 1906년부터 1910년에 걸쳐 시행되었다. 본격적인 부산항 축항공사는 1911년부터 시작되었는데, 1년여 간의 공사 끝에 부산항 제1잔교(1부두)가 1912년 3월에 완공되었다. 그 후속 조치로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1912년 6월 8일 조선총독부 제1호 부령으로 부산세관 잔교 사용규칙이 제정 및 시행되었다. 항만 발전 단계로 본다면, 이 시점에 이르러 부산포가 부산항으로 변모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통칭 2부두(1919), 3부두(1941), 4부두(1943)가 각각 완공되었다. 중앙부두는 해방 당시 미완공 상태에 있었다.

부산항이 질적 변화를 이루게 된 것은 1979년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5부두(자성대부두)가 준공되면서였다. 1960년대 말부터 컨테이너화가 빠르게 진전되었다. 우리나라 선사들도 컨테이너선 운항에 크게 뒤처져 있지는 않았으나 컨테이너 전용부두는 추세에 비해 늦게 개장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예산 부족으로 세계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빌려와 건설할 수 있었다. 1979년 이후 부산항은 비로소 현대적인 컨테이너항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컨테이너전용항만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1991년 신선대부두, 1997년 감만부두가 개장해 북항을 구성했다. 2006년에는 부산신항이 개장되어 계속 확장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부산항 개발의 역사는 부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발전, 해양사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 발전 단계 끝에 부산항의 시점이었던 북항은 무역항의 역할을 끝내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개발 중이다. 그러나 2030엑스포의 유치전이 진행 중이어서인지 북항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지에 대한 청사진은 제시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재개발 중인 북항은 단순히 시민을 위한 친수공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데는 전문가들과 시민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북항에는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하고 이런저런 시설이 옮겨올 것이다. 하지만 고층 빌딩만이 즐비한, 기성세대를 위한 재개발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개항 이후 150여 년 동안 부산항이 겪어 왔고, 부산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바와 그 속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젊은이들이 ‘부산’과 ‘바다’라는 플랫폼을 통해 미래를 꿈꾸고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설은 박물관이다. 영도에 국립해양박물관이 있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고 시설이 협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분야는 과학일 것이다. 부산에는 해양과학기술원이 있지만, 해양과학관은 없다. 현재 국립해양과학관은 경북 울진에 소재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접근성이 좋은 북항에 국립해양박물관과 국립해양과학관의 기획전시관(또는 분관)을 설치해, 시민들이 부산항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꿈꾸는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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