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
김효정 젠더데스크
타인 아픔 느끼는 공감 능력 인간 본성
실제 과학 실험 통해서 증명된 적 있어
폭력, 차별, 혐오, 괴롭힘 사건 증가세
공감 능력 퇴화한 것 아닌가 생각 들어
공동체로 함께 살기 위해선 배려 필요
덜 아프고 더 행복해지려 노력해야
벚꽃이 휘날리는 밤 포도청 종사관 황보윤은 상처 입은 관청 소속 노비 채옥을 치료해 주며 안타깝게 말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를 아프게 하지 마라.”
20년 전 많은 이들을 울게 했던 MBC 드라마 ‘다모’의 유명한 대사이다. 심지어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동영상사이트에서 이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남녀주인공의 애절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이 대사는 사실 인간 본성 중 하나를 드러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비슷하게 느끼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공감하는 인간)’라고 불리는 특성이다. 이 특성은 실제 과학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인간의 몸에 있는 신경 네트워크 일종인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해 모방하는 역할을 한다. 거울 뉴런은 타인이 배가 부르면 나도 배가 부른 것처럼 느끼고, 타인이 고통을 당하면 비슷한 통증을 겪게 한다.
그래서 전쟁 상황에서 잡은 적국의 장군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선 당사자를 고문하는 것보다 그 가족을 고문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 ‘아웃랜더’에도 이 상황이 잘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뛰어난 전사 제이미를 잡은 잉글랜드 군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잔혹한 고문을 가한다. 그 어떤 고문에도 버티던 제이미였지만, 그의 연인을 아프게 하려던 순간 무너져버린다.
남이 아프면 함께 아파할 줄 알고 남의 슬픔을 나눌 줄 아는 인간이기에 수백만이 함께 살아가는 첨단 문명 거대도시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면 가지고 있다는 이 능력이 무슨 이유인지 퇴화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충북 지사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대학교에서 정책 간담회를 열고 학생식당에서 식사했는데 이들이 먹었던 화려한 특식과 그 뒤에 앉은 학생의 초라한 식판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충북 지사와 국회의원들에게 제공된 식사는 학생 식당에서 팔지 않는 전복, 돼지갈비찜, 잡채, 튀김, 전골, 인삼 무침, 과일, 떡 등이 깔려 있었다. 카레밥과 된장국, 김치, 단무지가 있는 학생 식사보다 10배 이상 비싼 특식이라고 한다. 자식 키우는 부모라면 그 장면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머리카락을 팔아서라도 자식 먹고 싶은 거 사 주는 게 부모 마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학생들이 불쾌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해명을 보며 인간의 본성이라는 공감 능력이 퇴화한 국민의 대표들에 절망하게 된다.
공감 능력의 퇴화는 세대, 직업, 성별, 국적 등 다양한 그룹에서 차별과 혐오, 괴롭힘의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 학교 폭력의 형태는 예전보다 더 잔인해졌다. 젠더 갈등을 비롯해 장애인, 동성애자, 어린이와 청소년 등 약자를 향한 공격은 노골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자들 역시 이 같은 괴롭힘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기사를 썼다면 그 기자의 메일을 비롯해 SNS 채널에 비난과 인신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붙여쓰기가 클릭 몇 번으로 무한정 가능하고 간단한 검색으로 개인의 SNS 채널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2021년에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모욕당한 경우가 있냐는 질문에 신문사 기자의 78.4%가, 방송사 기자의 83.3%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과 기자라는 두 정체성이 결합한 여성 기자들은 외모 품평, 성희롱 댓글까지 시달리고 있다. 여성 기자 중에서도 난민, 소수자, 젠더 이슈를 다루는 기자들이 더 높은 강도로 괴롭힘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로 3년째 젠더데스크를 맡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젠더데스크가 뭔가요? 무슨 일을 하시는 건가요?”라고 묻는다. 간혹 “젠더데스크면 어쩐지 무서운 사람인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도 과격한 페미니스트 비슷하게 해석한 모양이다.
젠더데스크는 우리 기사로 인해 불쾌함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기사의 관점이나 표현을 다듬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더 행복해지려는 노력이자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얼마 전 기자 지망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한 학생이 “기자가 정말 되고 싶은데 어떤 능력이 가장 중요하냐”고 묻는다. 나의 답은 “사랑과 공감”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아프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 기자가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나의 설명에 미래의 후배들은 큰 박수를 보내주었는데 긍정의 의미일까 아니면 그저 특강을 한 선배에 대한 인사였을까.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