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이순신대로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대첩(大捷)이란 전투에서 아군이 적군에게 크게 이긴 것을 말한다. 우리 역사에서는 612년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청천강에서 중국 수나라 30만 침략군을 맞아 크게 물리친 살수대첩이 맨 먼저 나온다. 1019년 강감찬 장군의 고려군이 침략국 거란의 10만 병력을 전멸시킨 귀주대첩, 1592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학익진 전술을 펼쳐 왜군의 배 70여 척을 격파한 한산도대첩도 유명하다. 이 모두 우리나라 3대 대첩으로 평가된다.

한산도대첩은 육지에서 조선군과 백성이 똘똘 뭉쳐 왜군을 크게 무찌른 1592년 진주대첩, 1593년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도 불린다. 한산도대첩은 또 1597년 조선 수군이 13척뿐인 전선으로 133척의 왜군 함대를 궤멸해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집은 명량해전, 1598년 왜선 300척을 대파하고 왜군 수만 명을 사살함으로써 일본이 철수하게 만든 노량해전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으로 꼽힌다.

이러한 대첩에 ‘부산시민의 날’이 제정된 기원인 부산포해전이 끼지 못한 채 평가절하돼 못내 아쉽다. 이를 일본 학계도 반긴다고 한다. 1592년 이순신 장군이 통솔한 수군이 왜군 본영인 부산포를 선제공격해 130척의 배를 침몰시키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적군을 공포에 떨게 한 게 부산포해전이다. 이 해전은 방어 과정에서 승리한 대부분의 전투와 달리 열세인 전력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적의 심장부를 공격해 대승을 거두며 제해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대첩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충무공마저 부산포의 승전에 만족해 ‘임진년 대첩’이라고 높이 평가했을 정도다. 부산시가 1980년 부산포해전 승전일인 10월 5일(음력 9월 1일)을 시민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하는 이유다.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이날의 의의와 부산포해전의 가치를 모르는 시민이 많아 안타깝다.

지난 17일 부산시는 북항 재개발사업 매립지 중심에 신설된 간선도로 이름을 ‘이순신대로’로 확정해 고시했다. 총연장 2.5km의 왕복 8차로다. 부산포 대승의 무대가 지금의 북항이란 이유에서다. 도로명 부여에 머물지 않고 이순신대로 주변에 부산포해전을 대첩으로 재조명하며 널리 알리는 기념관이나 역사관을 마련해 상징적인 가로로 조성할 만하다. 국가나 민생을 먼저 챙기는 정치가 실종된 요즘, 나라에 헌신하고 백성을 아껴 성웅(聖雄)으로 추앙되는 충무공의 리더십을 선양할 필요성이 절실한 것도 한 이유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