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PK에서 '일당 독식' 화두가 심드렁해진 이유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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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PK 지역 보수 일당독식 타파는 오랜 화두
야당 헌신에 변화 열망 결합해 경쟁 체제로
최근 ‘코인’ 논란에 기득권 본색 드러낸 야
지역 정치 ‘원점 회귀’ 막기 위한 각성 절실

‘최소한의 균형이 필요하다.’ 부산·울산·경남(PK)에서 보수정당이 지방권력을 독점한 10년 전만 해도 지역 젊은 기자 사이에는 이런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일방의 독주로 인한 정치 붕괴는 중앙뿐만 아니라 지역 정치에도 동일하기에 이런 지향점을 갖는 건 기자로서 당연한 책무라는 게 당시 정서였다.

절대 열세지역에서 고군분투하던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애잔함도 작용했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노무현의 깃발 아래 떨어질 게 뻔한 선거에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헌신, 때론 경쟁력 있는 외부 인사에게 자리를 내주는 순수함도 있었다. 이들과, 이른바 ‘사 자’ 직업의 엘리트들이 즐비한 보수 정치인 중 젊은 기자들이 어느 쪽에 동질감을 느낄지는 예상이 가능하다. 기사에는 편향이 없어야 하지만, 이런 의식이 부지불식 간에 펜 끝으로 전달됐을 수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부산일보〉 정치부는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일당 독식을 끝내자’는 과감한(?) 기획 기사를 내기도 했다. 2016년 총선에서 현 야당이 부산에서 5석을 확보하며 마침내 지역 정치에 경쟁 체제가 확립된 데에는 이런 시도들이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당시만 해도 현 더불어민주당 계열은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애정을 줄 여지가 있는 정당이었다.

이제 그런 야당은 없다.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주류이고 기득권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확실해진 변화다. 단적인 예로 거대 보수정당에 맞서던 민주당의 단골 전략인 ‘단일화’는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 연대, 지난 대선 때 윤석열·안철수 단일화에서 보듯 보수의 전략으로 바뀌었다. 보수 세력이 ‘소수파’ 처지가 됐다. 형편이 변하니 행태도 달라졌다. 기득권의 특징은 현재 누리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집착이다.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 이후 당내에서 잇따르는 ‘도덕성 포기’ 발언은 민주당의 기득권 정치가 정점을 찍었다는 증거다.

지난 14일 민주당 ‘쇄신 의총’에서 양이원영 의원은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우리 당은 도덕주의가 너무 강하다”고 했고, 박성준 의원은 “도덕성 따지다가 만날 당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막후실세 김어준 씨가 때마다 외쳐온 “진보가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방어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민주당 비위 의혹에 대한 비판 여론을 ‘높은 도덕성’ 탓으로 돌리는 것도 궤변이지만, 윤리적 기반이 결여된 정치가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 아니 그런 정치가 과연 존속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부패한 보수정당’과의 대비를 위해 ‘깨끗한 진보정당’ 프레임을 만든 건 민주당 아니었던가? 백번 양보해 아직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김 의원 코인 의혹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태원 참사’ 대응을 두고 법무부장관에게 호통을 치던 그 순간에도 코인 거래에 탐닉하던 몰염치를 감싼다는 건 도무지 이해 불가다.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유족에게 2차 가해를 했다’며 초유의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을 밀어붙인 민주당이다. 최근 민주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도덕성이 낫다’는 일반 국민은 21.3%인 반면 ‘국민의힘 도덕성이 낫다’는 응답은 37.6%로 나타났다고 한다. 과거 민주당이라면 엄청난 충격을 느끼고, 형식적이나마 쇄신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우리를 향한 윤리 기준이 너무 높다”며 이런 인식 자체를 부정해버린다. “민주당은 도덕적 파산 선고를 받았다”는 ‘우군’ 정의당의 비판이 과하지 않다.

10년 전 ‘지역 정치 균형’ 화두에 천착한 기자들이 다시 모인다면 현재 민주당에게 당시와 같은 애틋함을 느낄까? 불리하다고 도덕성마저 내팽개치려는 민주당이 굳이 지역 정치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싶다. 22대 총선 결과는 아직 안갯속이다. ‘코로나19’와 ‘조국 사태’라는 양 쟁점이 뒤섞인 3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국적인 압승을 거뒀지만, 부산에서는 의석 수가 반으로 줄었다. 그만큼 PK 지역은 내로남불, 위선이라는 화두에 민감하다.

분명한 건 1990년 ‘3당 합당’ 이후 성취한 지역 정치의 경쟁 체제가 ‘원점 회귀’ 한다고 해도 과거처럼 지역주의 운운할 순 없을 것이다. 부패에 찌든 중앙당 주류 ‘586’과 진영 정치에 매몰된 초선들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개딸’ 눈치에 지역으로만 숨으려는 PK 민주당도 책임을 피할 순 없다. 경쟁이 살아있는 지역 정치라는 20년 공든 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의 대오각성이 절실하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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