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없는 위원장’‘실장급 위원장’… 기이한 BIFF 조직 구조 [BIFF, 위기를 기회로]
[BIFF, 위기를 기회로] 2. 낡은 시스템, 이젠 바꿔야
다이빙벨 사태 이후 만든 정관
이사장 권한 집중돼 개정 여론
운영위원회도 없이 ‘위인설관’
사무국 아래 마켓 위원장 어색
창립 멤버 주축 돼 운영된 조직
조직문화 개선·세대교체 필요
올해 28회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인사 내홍으로 10월 행사 준비에 ‘비상’이 걸렸다. 이전에 없던 운영위원장 직제를 신설하고, 새 위원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이용관 BIFF 이사장의 ‘내 사람 심기’라는 비판이 불거졌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에는 체계적인 시스템 부재와 해묵은 관행, 패거리 문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쇄신과 세대교체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1인에 권력 집중… 정관 개정을
이 이사장이 BIFF 안팎의 반대에도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이 이번 인사 내홍의 핵심이다. 결국 영화제를 넉 달여 남겨둔 시기에 영화제를 진두지휘해야 할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사의를 표하는 지경에 이른다. 직원들은 이 사태 이전에도 이 이사장이 허 위원장 권한인 직원 인사까지 지나치게 개입했다고 증언하고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영화학과 교수 A 씨는 “과거 영화제 중심에는 집행위원장이 있었고, 지금도 국내외 모든 영화제 얼굴은 집행위원장”이라며 “이용관 이사장이 집행위원장이었을 때는 조직위원장(부산시장) 간섭이 심하다고 불만을 제기해 놓고, 지금은 이사장 간섭이 과도해 집행위원장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장에 권력이 집중된 현재의 정관은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만들어졌다. 영화제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막기 위해 부산시장이 맡았던 조직위원장직을 없애고, 이사장 중심의 사단법인을 완전히 새로 꾸렸다. 그야말로 영화제가 민간에 이양된 것이다.
문제는 당시 정관이 최근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20차 정관 개정안 내용은 새로 생긴 운영위원장을 이사로 넣기 위해 이사 수를 기존 18명에서 19명으로 늘리는 게 전부다.
영화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기회로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역할과 권한을 명시하고, 인사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영화계 관계자 B 씨는 “칸영화제를 비롯한 다른 영화제는 BIFF처럼 이사장을 비롯한 수장급이 전권 행사를 못 한다”며 “업무나 권한이 안 나뉘어 있고, 이 사람이 저기 갔다가 여기 왔다가 하니까 이런 사달이 발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의대 영화학과 김이석 교수는 “아무리 사단법인이라 해도 국·시비 수십억 원이 투입되는 조직인 만큼, 공모제와 같은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임원 추천위원회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이사장이 추천한 인사를 검증하는 과정이 제대로 없다”고 지적했다.
■조직 쇄신·세대교체 목소리도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 필요성도 제기된다. BIFF는 1996년 제1회 행사가 개최된 후 30년 가까이 창립 멤버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됐다. 국내외 다른 영화제와 달리 대대적 물갈이나 세대교체가 진행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끼리끼리 문화’ ‘패거리 문화’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가 된 조 신임 운영위원장도 이용관 이사장과 오석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위원장 최측근이란 말이 공공연하다.
현재 BIFF 조직도에 따르면 ACFM은 사무국 아래 하나의 실에 지나지 않는다. 사무국장 아래에 실장이 있는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조직도상에서 오 위원장이 지금처럼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영화계 관계자들은 “BIFF가 현재 덩치에 맞지 않는 기이한 조직 구조를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계 관계자 C 씨는 “운영위원회가 있어야 운영위원장이 있는 거 아니냐”며 조직도상에 없는 위원회에 위원장 자리를 급하게 만든 문제를 꼬집었다.
영화계 관계자 D 씨는 “예산을 맡긴다고 임명한 사람이 예산 분야 전문가도 아니다”며 “영화제를 위해 구조나 인사 부분이 한 번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문화 개선과 세대교체 필요성도 제기된다. 영화계에서는 현재 BIFF 내부가 ‘가족 기업’이나 ‘사제 관계’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20년 이상 창립 멤버들을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되다 보니, 영화제가 가져야 할 역동성이나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BIFF도 조직 혁신을 통한 체질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고 ‘조직 진단을 통한 내부통제관리시스템 구축 용역’을 준비 중이다. 지난 19일 BIFF 홈페이지에 올라온 입찰 공고와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이번 용역은 영화제 조직 운영의 합리성, 효율성, 투명성 제고를 위한 조직 진단 등을 목적으로 한다.
오민욱 부산독립영화협회 대표는 “BIFF가 자체적으로 쇄신 필요성을 느껴 용역도 진행 중이니, 세대교체라는 측면도 고민해 주면 좋겠다”며 “창립 멤버들이 가진 노하우와 가치를 전수해서 다음 세대에게 좋은 양분이 돼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