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왜곡은 ‘외교의 국내 정치화’에서 비롯”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세토포럼 한·일 회원 20명 모여
팬스타 드림호 선상 전문가 토론
자국 정치에 종속된 외교 비판
달라진 위상 상호 인정부터 시작
한·일 청년 포럼 선상 개최 제안

지난 25일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팬스타 드림호 파라다이스룸에서 (사)세토포럼이 '새 시대의 한일 파트너십 구축'을 주제로 선상토론을 열었다. 백현충 선임기자 choong@ 지난 25일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팬스타 드림호 파라다이스룸에서 (사)세토포럼이 '새 시대의 한일 파트너십 구축'을 주제로 선상토론을 열었다. 백현충 선임기자 choong@

“한일 관계 왜곡은 외교의 ‘내정화(국내정치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사를 불문에 부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말했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발언을 한 한국 대통령이 여럿입니다. 이후 정말 더 이상 과거사가 논란이 되지 않았나요?”

“한국 총선, 일본 중의원 선거가 코앞입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요?”

토론하기엔 약간 어두운 조명, 어깨가 거의 붙을 정도로 좁은 공간, 그러나 아주 잠깐의 휴식도 없이 두 시간 이상 이어진 마라톤 발제와 토론은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강한 진정성이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사회를 맡은 유철준 세토포럼 상임이사가 웃음을 띠며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은 배 위라서 어떻게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토론에 집중하자는 제안이었다.

에어컨 바람에도 불구하고 목덜미가 뜨거웠다. 단지 좁은 공간 탓만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자리와 주제 때문만도 아닌 듯했다.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한일 관계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지난 25일 오후 4시,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로 운항하는 팬스타 드림호 객실 복도 끝자리에 자리 잡은 라운지 ‘파라다이스룸’. (사)세토포럼(이사장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 회원 20명이 붙어 앉았다. 한쪽 벽에 걸린 ‘새 시대의 한일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현수막이 없었다면 무언가를 작당한 ‘결사’처럼 보였다. 각자 소개가 끝나고 발제가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최근 셔틀외교에 대한 평가부터 한일 위상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양국의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고 답했다. 참석자는 외교, 정치, 경제, 언론이라는 카테고리만 다를 뿐 일본에서, 혹은 일본을 상대로 10∼40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이른바 ‘일본 전문가’들이었다.

첫 발제자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셔틀외교 복원까지 12년이 걸렸다”면서 짧게는 4년, 길게는 12년의 한일 관계를 '잃어버린 시간'으로 규정했다. 그는 또 “한일 관계 악순환은 한미일, 한중일 외교에 악영향을 주었고, 정부 갈등이 민간 교류 중단으로 이어지면서, 특히 경제 분야 피해가 컸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현장 조사단 파견,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와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복원, 한미일 3국 안보경협 강화 등은 그런 점에서 두 정상 셔틀외교의 성과로 꼽았다.

오랫동안 한일 경제를 취재했다는 김경한 컨슈머타임즈 대표는 두 나라 위상 변화와 공통점에 주목했다. 한국과 중국의 국제사회 위상 변화를 일본이 수용하고,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야 협력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이상주의에서 현실주의로 회귀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문재인 정권은 당위성에 근거를 두고 한일 역사문제를 풀려고 했지만 오히려 꼬아 놓았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선제적인 해법을 현실주의 회귀로 평가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한일 관계 왜곡은 외교를 국내 정치와 연동한 것에서 비롯됐다”면서 ‘외교의 내정화(국내정치화) 참사’라고 정의했다. 위안부 합의 건, 강제징용 배상 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이 같은 맥락에서 확산된 측면이 컸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외교관 생활을 오래한 서형원 전 주크로아티아 대사는 “과거사 문제가 상존하는 이유는 합의 아닌 일방적 조치와 호응을 기대했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도 매년 정월에 야스쿠니 참배, 신학기를 앞두고 교과서 검증, 여름엔 일본 국방백서를 두고 논란을 벌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충분히 예상되는 ‘상수’를 애써 풀려고 하기보다는 한일 두 정부가 국내 정치 소재로만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양국 언론과 정치권이 두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이라고 주장하는데, 복원도 시점이 중요하다”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복원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복원, 즉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중국의 부상을 수용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형원 전 대사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한일이 아니라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이를 한국이 개최하는 방식을 제안했고,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은 토론에서 “미래 세대에 방점을 찍은 청년포럼을 한일 양국을 오가는 팬스타 드림호에서 개최하면 좋겠다”고 제의했다.

장제국 총장도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 해답이라면서 일본과 가장 가까운 부산을 중심으로 항공편 증설, 조선통신사 축제, 그리고 한일판 '에라스무스 문두스' 설립을 제안했다. 에라스무스 문두스는 외국인 학생 장학 프로그램을 뜻한다. 한일 두 나라 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학비를 보조해 주는 제도다.

세토포럼은 서울(Seoul)과 도쿄(Tokyo)의 앞글자 영어를 각각 따서 2013년 발족한 한일 관계 전문 포럼으로, 매년 10차례 안팎의 정례회의를 통해 한일 공동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와 패러다임을 제안해 왔으며, 최근에는 청년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백현충 선임기자 choong@busan.com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