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흉물에서 랜드마크로, 부산 부의 지도 바꾼 '뷰' [부산피디아 ep.5 광안대교]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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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국 전 사업소장의 건설 비사
남천동~동백섬 왕복 4차로 될 뻔
해운대 신시가지 미래 보고 설득
바닷물에 녹슬지 않는 강철 다리
지진·태풍에 끄떡없는 비법 찾아
다리 조망권 따라 집값 수억 차이
고급 주택지도 내륙서 해안가로

부산 최고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열 명에게 물어보면 아홉 명은 이곳을 꼽는다. 바로 광안리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다이아몬드브릿지’ 광안대교다. 부산시민에게 광안대교는 여러 가지 의미로 친숙하다. 매일 수십만 명이 이용하는 출·퇴근길이자 불꽃축제, 마라톤대회 등 여러 행사의 개최지로 활용된다. 영화 속 단골 로케이션 장소로 해외에서도 인기다. 마블의 히어로 블랙팬서도 광안대교를 뛰어다녔다. 광안대교 없는 부산은 상상하기 힘든데 이 다리가 한 공무원의 노력이 이뤄낸 결실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광안대교 건설을 주도한 전 광안대로 건설사업소장 조창국(80)씨를 만났다.


광안대교 건설을 주도한 조창국 전 광안대로건설사업소장. 부산일보DB 광안대교 건설을 주도한 조창국 전 광안대로건설사업소장. 부산일보DB

■ 모두가 반대한 다리

조 씨는 광안대교가 ‘원시인이 만든 다리’라며 옛일을 떠올렸다. 당시 기술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업이라는 의미. 1994년 12월 착공해 2003년 1월 6일 개통한 총사업비 7899억 원,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조 5000억 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 주탑 간의 거리만 500m에 달하는 총길이 7420m의 국내 최초 복층 해상 교량이자, 최장 현수교. 조 씨는 “당시 부산의 제일 긴 다리의 경간장(교각 사이의 거리)은 60m에 불과했다”며 “미국의 골든게이트교와 브루클린 브릿지, 일본의 레인보우교를 보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광안대교 건설이 시작되자 반대 여론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왜 땅을 두고 바다에 지으려고 하느냐, 비싼 현수교가 웬 말이냐, 자연을 망치는 흉물이라는 등 논란은 계속됐다. 조 씨는 “환경오염, 건설 공해로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가 컸다”며 “멱살잡이는 예사고, 사무실까지 찾아와 집기를 부수고 집 대문에 오물을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씁쓸하게 털어놨다.

그런데도 반드시 광안대교가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해운대신도시 때문이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의 주택 200만 호 건립 정책으로 진행된 해운대신도시. 문제는 도로였다. 왕복 4차로에 불과했던 수영로는 증가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수영로 확장, 고가도로 등 아무것도 대안이 되지 못했다. 조 씨는 “광안대교는 해운대신도시를 성공시키기 위해 지어진 다리”라며 “남천과 해운대신도시를 10분 생활권으로 묶는다면, 잠재적 미래 가치는 수천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어진 광안대교. 현재는 부산의 대표 랜드마크가 됐다. 조창국 씨 제공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어진 광안대교. 현재는 부산의 대표 랜드마크가 됐다. 조창국 씨 제공

초기 광안대교는 남천동 49호 광장에서 동백섬 입구까지, 해운대신도시 만을 위한 진입로 개념으로 현재와 같은 상·하판 8차선 체제가 아닌 왕복 4차선 단층 콘크리트 다리로 구상됐다. 그러나 조 씨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육군 비행장으로 쓰인 수영비행장, 벌판이었던 수영만매립지, 개발의 여지가 있는 기장군 등 부산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4차선으로는 부족했다. 조 씨는 “당장 공사는 쉽겠지만, 공직자로서 기술사로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며 “왜 8차선 다리가 필요한지 수십 번의 설명회를 거쳤고, 끝까지 반대한 시의원들은 집까지 자료를 들고 찾아가 한 사람씩 설득해 나갔다”고 했다. 또 광안대교는 해운대에서 명지, 녹산 공단까지 연결되는 부산 해안순환도로의 출발점이 되는 사업이기도 했다. 그는 “부산의 현재 도로망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광안대교”라며 "왜 상판이 마린시티 방향이 아니냐고 궁금해 하는데, 당시 해운대는 황무지고 마린시티는 바다였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현수교 주탑과 함께 남천동을 바라보는 게 더 적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씨는 "온 세상이 반대했는데, 딱 한 분 김영환 시장만 찬성을 했다"며 "당시 부산시 1년 예산의 3배가 넘는 사업을 승인해 줬는데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 기대수명은 200년+α

광안대교 건설 과정은 국내 건설사에 한 획을 그었다. 조 씨는 ‘앞일을 내다보지 못한 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혼’을 갈아 넣었다. 그는 광안대교의 기대수명이 200년 이상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1995년 1월, 광안대교 착공 한 달 뒤 일본에서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다. 조 씨는 직접 일본 참사 현장으로 시찰을 나갔다. 그는 “대지진 이후 광안대교의 내진설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며 “광안대교의 다릿발은 해저 밑 바위 속 1.5m 깊이에 박혀있다. 진도 9의 강진이 와도 끄떡없다”고 주장했다.

태풍에도 안전하다. 광안대교는 평균풍속 초속 45m, 최대풍속 초속 78m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2003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 해안가는 큰 피해를 봤지만, 광안대교는 멀쩡했다. 비결은 설계 당시 ‘풍동실험’을 적용했기 때문. 이름조차 생소한 이 실험은 터널 모양의 공간 안에서 바람을 발생시켜 건축물의 피해 정도를 점검하는 실험으로 교각에 풍동실험을 접목한 것은 광안대교가 국내 최초다. 조 씨는 “수소문 끝에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 대학교에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안대교에 적용했다”며 “상·하층으로 설계해 트러스교로 만든 것도 바람에 더 잘 견디게 하기 위함이다”고 했다.


국내 최초 풍동실험이 적용된 광안대교.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조창국 씨. 조창국 씨 제공 국내 최초 풍동실험이 적용된 광안대교.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조창국 씨. 조창국 씨 제공

바다 위 콘크리트 교량의 수명은 50년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말 1940년에 준공한 영도다리는 30년도 견디지 못하고 수리를 시작했고, 결국 대부분을 철거한 후 다시 건설했다. 바로 녹 때문이다. 쇠로 지은 강교인 광안대교는 어떻게 20여 년 동안 녹이 슬지 않을까. 비밀은 특수 페인트에 있다. 광안대교에는 미국 나사가 개발한 인공위성 전용 페인트 ‘IC531’가 쓰였다. 이 페인트는 쇠의 표면에만 발리는 게 아니라 철판 0.2mm 깊이까지 침투해 부착되어 녹이 스는 걸 방지해 준다. 조 씨는 비용은 배가 넘게 들었지만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투자였다고 한다. 그는 “모래를 이용해 철판 표면을 벗겨내는 ‘샌드블라스트’ 작업이 필수적인데 까다로운 공법으로 부실시공도 원천적으로 막았다”고 했다.


■ 광안대교는 ‘반쪽짜리’ 다리?

광안대교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출퇴근길과 주말의 극심한 교통체증. 용당램프로 빠지는 차들로 인해 광안대교 상판 1·2차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약 5km 정체가 이어지는데 3차로에서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들로 종종 시비가 붙곤 한다. 하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센텀시티, 해운대로 나가는 차들로 3·4차로는 엉망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하지만 당초 광안대교는 이 모든 교통량을 원활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바로 ‘광안대교 2단계 계획’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광안대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조 씨는 “광안대교 2단계 계획은 남천동 삼익비치아파트 앞 곡선 구간에서 갈라져 용호만을 지나, 이기대공원 밑으로 터널을 파 감만동에 있는 부산항대교까지 연결되는 4차선 우회도로를 포함하고 있었다”며 “설계, 시공까지 마친 이 계획이 갑자기 백지화가 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 씨는 2단계 계획이 실현됐다면 용당램프에 다다르기 전 감만동, 영도로 가는 교통량을 미리 분산시켜 광안대교의 정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공간이 분기점을 만들려다 공사가 중단된 구간. 부산일보DB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공간이 분기점을 만들려다 공사가 중단된 구간. 부산일보DB

2단계 계획의 흔적은 여전히 광안대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리케이드로 가로막혀 쉽게 알아챌 수 없지만, 분기점을 만들려다 갑자기 도로가 끊긴 흔적을 확인가능하다. 상하판 합쳐 약 3000㎡ 면적의 공간이 유휴지로 방치되고 있는 셈. 한때 이 공간에서 번지점프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조 씨는 “2단계 계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신선대 지하차도와 광안대교를 연결하거나 해안도로를 내는 방법이 있다”며 “지금 광안대교는 반쪽짜리”라고 말했다.

교통체증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2017년 남구청은 광안대교와 이기대공원로를 연결하는 해상도로 신설을 부산시에 건의했다. 당시 부산시는 “용호부두와 용호만 매립 부두 위를 지나는 연결도로는 유람선 운항에 제약을 줄 수 있고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며 반대했다. 2019년 광안대교와 러시아 화물선의 충돌사고를 계기로 용호부두는 폐쇄됐다.


광안대교 건설 이후 부산의 ‘부’는 내륙에서 해안으로 이동했다. 부산일보DB 광안대교 건설 이후 부산의 ‘부’는 내륙에서 해안으로 이동했다. 부산일보DB

■ 뷰가 바꾼 부

남구, 수영구, 해운대구 이곳에 있는 아파트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뭘까. 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등 다른 지역에서도 통용되는 요인들이 있지만, 부산에는 특이한 요건이 하나 더 붙는다. 바로 ‘광안대교 뷰’다. 같은 평형대라도 광안대교가 보이면 값을 더 잘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뷰’가 ‘부’를 바꾼 셈. 거실에서 광안대교가 보인다는 것은 부산에서 ‘비싼 아파트’를 구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민락동의 한 아파트는 같은 평형대임에도 불구하고 광안대교 뷰 유무에 따라 4억 원 이상 가격 차이가 나타난다.

광안대교는 단순히 한 아파트 가격에만 영향을 끼친 게 아니라 부산지역 전체 ‘부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부산의 부는 광안대교 건설 이전 이후로 달라진다. 과거 동래구 등 전통적 부촌인 내륙이 부산의 집값을 이끌었다면, 광안대교 건설 후엔 남·수영·해운대구가 견인하고 있다. 용호동 W, 우동 마린시티의 해운대아이파크와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 중동 LCT 등 부산의 최고가 주상복합 아파트가 해안을 따라 들어섰고, 그 중심에는 광안대교가 있다. 광안대교라는 유일무이한 ‘뷰’가 생기면서 내륙에서 해안으로 부가 이동한 것이다. 조 씨는 “건설 당시 삼익비치 주민들의 반대가 특히 심했는데, 아이러니한 일”이라며 “광안대교를 따라 늘어선 카페, 오피스텔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고 했다.

특히 재건축 가능성이 높은 삼익비치 등 광안대교 영구조망이 가능한 단지는 향후 부산 부동산 시장에서 유례 없는 최고가를 찍을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동의대 부동산대학원 강정규 원장은 “훌륭한 관광 자원이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증명한 게 광안대교”라며 “해운대구, 수영구 등 해안가에 부산의 부가 몰리게 된 데에는 광안대교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전문가들은 재건축 후 삼익비치 국평은 30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고 했다.


부산불꽃축제의 성공은 광안대교라는 훌륭한 스케치북이 있어서 가능했다. 부산일보DB 부산불꽃축제의 성공은 광안대교라는 훌륭한 스케치북이 있어서 가능했다. 부산일보DB

■ 손가락질 받던 흉물, 박수를 받다

‘다이아몬드 브릿지’라는 별명은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광안대교의 조명 덕이다. 광안대교 조명은 초기 설계에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시간대별로 조명 색을 달리해 인기를 끌었다. 매년 1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부산불꽃축제도 광안대교 덕분에 큰 성공을 거뒀다. 불꽃축제는 광안대교를 적극 활용한다. 현수교 양쪽 두 곳의 앵커블록은 레이저쇼를 위한 스케치북이 되고, 광안대교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수 불꽃’은 불꽃축제의 하이라이트다. 혼자서도 아름다운 광안대교에 웅장하고 화려한 불꽃까지 펼쳐지니,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들로부터 흉물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다 지금은 박수를 받는 광안대교. 단순한 다리를 넘어 부산의 대표 랜드마크가 됐다. 수많은 역경을 뚫고 광안대교를 탄생시킨 조창국 씨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광안대교가 마치 막내아들 같다고 말한다. 조 씨는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참 영광스러운 일이자, 행복한 일”이라며 “광안대교를 아껴주는 부산시민에게 감사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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