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과거를 무시하면 미래가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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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독재자 행적·발언 손자가 폭로
반성·후회 없이 생을 마쳐 씁쓸
잘못 인정하고 사과했어야

현 통수권자 역사의식 아쉬워
일제 강점 역사 잊으라고 주장
80년 광주와 4·3의 슬픔 기억을

느닷없이 나타난 독재자의 손자로 인해, 2023년 5월은 예년과는 다소 다른 5월이 된 것 같다. 이 손자는 집안의 치부를 기꺼이 들추어내었고, 그러자 평소 가려져 있던 학살자의 생각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종합하면, 독재자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했고, 피해자와 희생자를 조롱했으며, 재임 시절에 그토록 강조하던 국가와 민족을 속이는 일을 거침없이 자행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전까지는 독재자의 내심을 직접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재자의 행적과 발언이 손자에 의해 폭로되면서, 독재자가 일말의 반성이나 후회조차 없이 생을 마쳤다는 씁쓸한 상념마저 지울 길이 없게 되었다.

만일 독재자가 죽기 직전에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를 전했다면, 그래서 역사 앞에서 자신의 실책을 조금이라도 용서받고자 했다면, 그에 대한 마음이나 그를 둘러싼 여론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잊고 반성의 태도를 무시하는 일은 현 통수권자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일제 강점의 역사를 잊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로는 독도는 한국 땅이며, 일본을 위한 정책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작은 이익과, 경제적 손익과, 미래의 유산을 핑계로, 한 국가가 요구해야 할 정당한 사과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4월에도 그릇된 역사의식을 앞세운 그의 위험한 행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4·3을 간과했고, 그 의미를 무시했다. 일제 강점의 과거사와, 1980년 광주의 아픔과, 4·3의 슬픔은 현재의 이익을 위해서 아무렇게나 다루어져도 좋을 사소한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지나간 일이고 우리의 삶은 미래를 지향해야 하니, 자꾸 따지는 것은 옪지 않다는 그의 논리가 함부로 적용될 대상도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무시하면 현재는 흔들릴 것이고, 흔들리는 현재는 필연적으로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수권자가 역사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그를 비판하며 올바른 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 정치인들이 도리어 그 상황을 이용할 생각에 골몰한다면, 과연 진정한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까. 아마도 비운의 역사를 반복할 가능성만 늘어나지 않을까. 문제는 비운의 역사가 반복된다고 해도, 개의치 않은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다. 개의치 않아 하는 이들에게 역사는 요령껏 활용할 기회일 따름이다. 그들의 편리한 사고에 따르면, 한반도가 강제 점령되면 점령자의 논리를 받아들이면 그만이고, 1980년 광주의 학살이 확인되어도 과거를 부인하면 그만이며, 4·3의 아픔에 괴로워하기 이전에 4·3 자체를 지워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목소리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를 이제 잊자거나 미래를 위해서 양보하라는 식의 논리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필연적으로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지지해서는 안 될 것이고, 5·18의 아픔을 배신하는 사람을 옹호해서는 안 될 것이며, 4·3을 애매한 태도로 부인하고 자신의 이익에 맞게 재단하는 사람을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역사를 잊은 그들이 권력을 쥐게 된다면, 그러한 과거와 역사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우려가 한계치에 달했음을 느낀다. 부산항에 펄럭이는 욱일기를 바라보며, 그 욱일기는 관례일 뿐이라는 심드렁한 말을 들으며, 점점 불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의해 과거를 무시하라고만 강요받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불행한 일이다.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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