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소똥구리
논설위원
어쩐 일인지 6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촛불집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였다. 그 엄숙한 집회 현장에서 피식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 나부끼는 깃발들 사이로 이런 글귀가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장수풍뎅이 연구회’. 파하.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민주묘총’ ‘범야옹연대’ ‘전견련’ ‘국경 없는 어항회’ ‘한국곰국학회’…. 이런 패러디의 깃발들도 버젓했다. 그냥 장난인가? 아니다. 어두운 ‘골방’을 박차고 신성한 ‘광장’으로 뛰쳐나온 개인과 다양성의 승리다. ‘대의’와 ‘선동’이라는 거대 관념을 보기 좋게 차 버리고 공적 공간을 사적 공간으로 채운 바로 거기에 ‘무의미’ 혹은 ‘무위’라는 가치가 있었던 것. 이를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있으려나.
이런 얘기를 꺼낸 건 소똥구리 때문이다. 소똥구리는 풍뎅이와 같은 종류라 보면 된다. 하지만 비슷하되 다르다. 소똥구리는 소똥뿐만 아니라 다양한 초식동물의 똥을 먹이로 삼는다. 다른 곤충과의 차이점은 한 번 입을 대면 계속 먹기 때문에 먹으면서 싼다는 것이다. 〈파브르 곤충기〉에 따르면 소똥구리가 12시간 동안 배설한 양이 자신의 체중 이상이었다 한다. 소똥구리는 다른 풍뎅이와 달리 배설물을 공 모양으로 뭉쳐 은신처까지 굴려 간다.
교과서에까지 등장할 만큼 친숙했던 소똥구리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멸종됐다. 소가 농장에서 집단으로 사육되면서 풀이 아닌 인공사료를 먹게 됐는데 사료 속 구충제와 항생제, 농약 등이 치명적이었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를 끝으로 공식적으로 야생에서 관찰됐다는 기록이 없다. 현재 경북 영양군에 있는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몽골에서 들여온 소똥구리를 증식해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충남 태안군이 2024년부터 소똥구리를 방사하고 서식지도 복원할 계획을 밝혔다.
소똥구리는 ‘생태계의 청소부’로 불리는 익충이다. 소똥구리가 먹고 분해한 똥은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한다. 2017년 논문에 따르면, 소똥구리는 공룡이 존재하던 1억 3500만~6500만 년 전 백악기 전반기부터 지구에 살았다. 애초 이 곤충이 굴리던 것은 소똥이 아닌 공룡의 똥이었다는 뜻이다. 모든 생물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한 생물 종이 사라지면 생태계 균형도 깨진다. 동식물이 살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인간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소똥구리 방사 계획이 멸종 위기종들을 되살리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