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각별한 인연 특별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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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화가 금경과 송혜수의 ‘소‘(1997). 남영희 제공 화가 금경과 송혜수의 ‘소‘(1997). 남영희 제공

부처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중생의 세계에 오셨을까. 세상살이가 죄 인연이라 한다면, 깨우침에도 귀한 인연이 있다. 부처님 오신 날 각별한 인연의 특별한 전시를 찾았다. 송혜수 탄생 110주년 기념전이다. 작고한 그해까지 10여 년 송혜수 화백에게 사사한 제자 금경이 마련한 전시회다. 부산어린이대공원 언저리에 자리한 갤러리 콩은 이름만큼이나 단아한 문화공간이다. 전시기간이 짧고 9점에 불과한 작고 소박한 전시지만, 작품이 뿜어내는 형형한 빛과 색채는 작은 공간을 채우고도 남았다.

송혜수는 망국의 비애가 가득했던 1913년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 정착한 화가다. 재동경조선인유학생 단체 백우회(白牛會) 동인이자 독립전과 자유전을 통해 화단과 평단의 주목을 끌었다. 부산화단에서 송혜수의 자리가 특별한 까닭은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는 점이다. 1950년대 말 설립한 송혜수미술연구소는 미술후속세대를 길러낸 요람이었다. 부평동 오아시스다방 인근에서 부영극장 뒤 한백빌딩, 남천동으로 옮겨가며 50년 넘게 운영했다. 제자들과 함께 신자유미술가회를 결성하여 부산미술의 바탕과 둘레를 든든하게 다지기도 했다. 김원갑, 성백주, 김원호, 이강윤, 전준자, 김정명, 전태영 등이 초기 동인이다.

치열한 예술혼의 발현이었을까. 송혜수는 명망 있는 제자들을 두루 배출했다. 사제지간의 인연과 교분을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으랴. 그는 늘그막에 찾아온 금경을 제자로 삼을 마음이 없었다. 테스트 삼아 그려보라 한 불두(佛頭)가 마음에 들었던지 문하생으로 품었단다. “작은 캔버스지만 여기에 네 인생을 데생한다고 생각해라.” 지금도 생생한 스승의 가르침이다. 비록 작을지라도 캔버스는 무한한 세상이자 작가의 생을 오롯이 담은 공간이 아니랴. 스승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애(無碍)의 창작혼을 캔버스에 담으려 했듯이, 제자 또한 그 길을 좇으려 하지 않았을까.

송혜수의 미술사적 위상을 고려하면 전시회의 규모와 방식은 온당한 대접이라 할 수 없다. 지역사회에서 작고예술인을 현양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제자가 스승을 기리는 전시에 가깝다. 금경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1997년 작 ‘소’를 꼽았다. 짙은 초록색 선으로 소 두 마리를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미완의 느낌 그대로 좋다는 제자의 평에 붓질을 멈추고 서명한 작품이라 한다. 채우지 않고도 가득 찬 캔버스를 보았으니 염화미소가 아니었을까. 소는 송혜수의 대표적인 오브제다. 미욱하고 둔해도 거짓 없고 진실한 존재다. 느리지만 뚜벅뚜벅 걷는 소걸음이 결국 만 리를 가는 법이다. 스승을 통한 앎과 깨달음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상선약수가 아니겠는가. 마음으로 맺은 인연의 닻은 흔들림이 없어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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