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공지능과 교육의 공존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윤정진 동명대 유아교육과 교수

도서관에 가면 맡게 되는 오래된 책의 쾨쾨한 종이 냄새를 유별나게 좋아한다. 중고 서점에서 절판된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할 때 느끼는 그런 희열 같은 냄새는 요즘같이 비가 와 습기가 많은 중앙도서관의 한적한 인문학과 철학책 칸에서 만날 수 있는 감동과도 비슷하다. 세련된 디자인의 잉크 냄새가 물씬한 신간 코너를 지나 시간과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마키아벨리처럼 통찰하고 뉴턴처럼 상상하기’라는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 예술과 과학에 대한 인문학책이었다.

책 제목처럼 ‘통찰하고 상상하기’는 고대와 중세 철학의 중요한 행위였다. 이는 또한 21세기 교육의 목표이며 핵심 역량이기도 하다. 작년부터 철학과 인문학 부분을 수업 시간에 좀 더 비중있게 다루어야 하겠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차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마키아밸리와 뉴턴의 통찰과 상상은 나에게 많은 고민을 던졌다. 최근 대학들은 재정과 충원률 같은 현실적 문제에 당면해 철학과 인문학 분야의 기초학문을 교양과목으로 빼거나 관련 학과를 없애고 있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또한, 코로나를 경험한 MZ세대들은 컴퓨터로 다양한 미디어 전자책, 웹툰, 영화, 게임 등 원하는 모든 정보와 즐거움을 바로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굳이 그들에게 진득하게 앉아 통찰하고 상상하면서 새로운 자기만의 지식을 만들어 나가라고 하면 ‘고지식한 교수’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때는 바야흐르 ‘인공지능 시대’이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는 미래학자 레이커즈 와일은 ‘수확 가속의 법칙’을 인공지능 기술 발달에 대입시켰다. 수확 가속의 법칙은 기술의 진화 과정이 가속적이며, 그 산물 또한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을 말하는 기술 진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2029년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나오고 2045년 인류 전체의 지능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인공지능은 좋은 도구의 역할을 2028년 정도까지는 충실히 하다가 2040년이 넘어서면 인류를 초월하기 시작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지식, 정보, 기술 분야에서 인류를 압도하지만, 공감과 창의적 상상력,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고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가지고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 거라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통찰과 상상, 공감과 사고의 영역이 어느 때보다도 더 요구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것은 지식과 기술을 쌓아가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코딩은 인공지능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한창 대세인 코딩교육을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상상력, 통찰력을 갖추면서 공부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공감을 통해 기존의 것을 새로 만들어 내거나, 혁신을 일으키는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공감과 상상력, 창의성도 머지않아 인공지능 안에서 다 가능할 것이라 호언장담하는 주변의 공대 교수님들이 많지만, 현 시점에서는 가능한 부분이 아니라 버티고 외면해 본다.

진짜 자아, 진짜 나로 살기 위해서 인공지능 시대가 오더라도 대체되지 않는 자아를 준비하는 것이란 곧 철학적 사고로 공감력과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자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고유한 개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보전하면서 사색하는 힘이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 불가능한 자신의 존엄성을 가지고 고유한 개인으로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많은 교과목도 인공지능 시대 안에서 철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 학기 수업부터는 학생들과 통찰하고 상상하는 철학적 시간을 가질 것이다. 내 수업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이다. 늘 가르친다는 것은 ‘어떻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