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형의 집행시효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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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단두대에 대한 성찰〉에서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라고 단언했다. 사형은 일벌백계가 아니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본보기일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사형수와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교수의 만남을 통해 죄와 벌, 그리고 사형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강동원과 이나영이 사형수와 교수를 연기했다.

우리나라에 복역 중인 사형수는 59명이다. 2014년 6월 육군 병장 신분으로 전방 초소에서 5명을 살해한 임 모(31) 씨가 마지막 사형 확정자(2016년 2월 19일)다.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26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사형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현실 세계의 잔혹한 범죄와 피해자의 절규 앞에 사형제 폐지 목소리는 힘을 잃기도 한다. 강동원 역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나 강호순으로 대체해도 사형제 폐지가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우리 헌정사에는 사형에 대한 두 번의 합헌 결정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11월 살인 및 강간미수 혐의로 1·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정석범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9명 중 7명 합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헌재의 2010년 2월 두 번째 합헌 결정은 재판관 의견이 5(합헌)대 4(위헌)로 팽팽했다. 위헌으로 결론 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내야 한다.

정부가 최근 현행법상 30년으로 규정된 사형 집행시효를 없애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국회에 제출했다. 1992년 10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여호와의증인 교회에 불을 질러 15명을 숨지게 하고 25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1993년 11월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은 원 모(67) 씨의 집행시효가 올해 11월로 끝나기 때문이다. 집행시효 없이 계속 수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인데 이럴 경우 사형은 사실상 종신형이 되는 셈이다. 이와 별도로 헌재가 연내 세 번째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인데 시대 변화는 사형제 폐지와 대안으로서의 종신제 도입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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