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따라 조선통신사 여정 3100㎞를 답사하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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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초량왜관연구회 전우홍 씨
화원 이성린 ‘사로승구도’ 관심
28년간 조선통신사 관련 공부

‘부산~에도’ 요트 답사 도전
33일간 전체 코스 왕복 성공
“한국·일본 연결 통신사 뱃길
관광 우호의 항로 정례화 꿈”

개인 요트를 타고 조선통신사 여정을 답사한 전우홍 씨.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개인 요트를 타고 조선통신사 여정을 답사한 전우홍 씨.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270여 년 전 그림 기록을 따라 조선통신사 사행 길을 길이 9.5m의 개인 요트를 타고 33일간 다녀온 이가 있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 회원인 전우홍(68) 씨는 지난 6월 2일부터 7월 4일까지 부산에서 일본 도쿄에 이르는 통신사 전 코스를 왕복 답사했다. 3100㎞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전 씨는 “손꼽아 고대하던 성지순례를 다녀온 기분”이라고 했다. 그가 조선통신사 사행의 유일한 그림 기록인 ‘사로승구도’에 운명적으로 꽂힌 것은 1995년이었다. 당시 독일인 친구의 요트를 타고 쓰시마에 갔을 때 이즈하라에서 통신사 행차도와 ‘소동마상휘호도’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뒤 조선통신사에 관심을 가졌고 곧바로 사로승구도와 만났다.

“사로승구도는 1748년 조선통신사 화원으로 파견된 30세의 이성린이 부산~에도 여정을 30장 연작 그림으로 남긴 참으로 진귀한 기록이에요. 200여 년 12차례의 조선통신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사로(槎路)는 일본 뱃길, 승구(勝區)는 빼어난 경관을 말한다.

조선통신사 여정 답사 중 개인 요트의 키를 잡고 있는 전우홍 씨. 전우홍 제공 조선통신사 여정 답사 중 개인 요트의 키를 잡고 있는 전우홍 씨. 전우홍 제공
일본 도모노우라 근처 절벽 위 반다이지(盤臺寺) 모습. 전우홍 제공 일본 도모노우라 근처 절벽 위 반다이지(盤臺寺) 모습. 전우홍 제공
조선통신사 여정 답사 중 뱃길의 한 장면. 전우홍 제공 조선통신사 여정 답사 중 뱃길의 한 장면. 전우홍 제공

그는 사로승구도의 그림 여정을 그대로 따라 항해하리라 진작에 마음먹었는데 이번에 미해군 군무원 퇴직을 앞두고 장기휴가를 받아 마침내 실행하게 됐다. 그는 “270여 년 전 그림을 바다에 활짝 펼쳐 항해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고래가 물을 뿜고 악어가 물을 토하는 듯한 장관이라던 북규슈 아이노시마 앞 비공암(鼻孔岩), 천하명승 도모노우라 근처에 마치 푸른 벼랑이 바다에 꽂혀있는 듯한 시도(矢島)와 그 위 반다이지(盤臺寺)를 마주할 때 감탄을 쏟아냈어요.”

그는 부산에서 쓰시마를 거쳐 시모노세키에서 세토내해에 접어들어 6월 14일 오사카에 도착한 뒤 4박 5일간 렌트카를 빌려 오사카~에도(도쿄) 육로 일정은 왕복 답사했다. 다시 돌아온 오사카에서 6월 21일 출항해 7월 4일 밤 11시 40분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도착했다. 33일 여정 중 육지 부분은 5일 만에 주파하고, 나머지는 요트에 몸을 실었다. 중간중간 여정에 총 8명이 합류했다고 한다.

위험하고 곤란했던 상황도 여러 차례 있었다. 6월 29일 귀로 중 히로시마 근처 섬들 사이에서 요트가 사구에 좌초됐다가 지나가는 어선이 끌어줘 탈출할 수 있었고, 그 다음날 인근 항 입구에서 또 좌초된 뒤 4시간이 지나 물이 차오르면서 겨우 빠져나온 경우도 있었다. 출발 며칠이 지난 6월 7일 시모노세키 근처 비바람 속에서는 물때를 착오해 거꾸로 항해한 적도 있었다.

전우홍 씨가 지도를 가리키며 조선통신사 뱃길 답사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전우홍 씨가 지도를 가리키며 조선통신사 뱃길 답사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이번 항해는 28년에 이른 그의 ‘조선통신사 공부’의 한 정점이다. 경북 영주 출신인 그는 제주대 어로학과를 졸업한 뒤 줄곧 바다와 관련된 삶을 살았다. “제주에서 9년 살았고, 1985년 부산에 왔어요. 부산 사람들은 외려 바다에 무덤덤해요. 저 같은 내륙 출신이 바다에 깊이 빠지죠.” 그가 빠진 바다는 ‘조선통신사의 바다’로 집약돼 갔다. 그는 1996년부터 내리 4년간 일본의 조선통신사연고지연락협의회 초창기 행사에 참석했다. 그때 조선통신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반향을 일으킨 재일 한인 역사학자이자 영상가인 신기수 선생과 인연도 맺어 한때 그는 선생의 후계자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2005년 부산에서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가 탄생했으니 전 씨의 조선통신사 공부는 상당히 앞선 것이었다.

그는 2000년 통신사 선박 작은 모형을 한일을 아울러 최초로 복원했고, 국립해양박물관의 통신사 선박 1/2모형 복원과 목포해양문화재연구소의 전통 선박 재현에 직간접의 일조를 했다. 실제 그의 꿈은 조선통신사 선박을 ‘움직이는 역사관’으로 복원해 한·일 청소년을 승선시켜 성신교린의 역사를 미래지향적으로 공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역사관에 사로승구도를 전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1998년 당시 다 공개되지도 않은 사로승구도를 어렵게 구한 뒤, 물 건너 중국인 화가에게 의뢰해 사로승구도 30장 전질을 실제 크기로 1여 년 만에 복원 완성했다. 1998~2019년 부산과 일본을 오가며 사로승구도 모사 작품 전시를 9차례나 했으며 상당한 호평과 얘깃거리도 남겼다. 30년간 해양유물을 수집해 박물관을 차릴 정도이고, 2010년 논픽션 ‘장보고 뱃사람이 말하다’로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는 등 그의 얘기는 무진장했다.

조선통신사 뱃길 여정을 기록한 전우홍 씨의 항로 일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조선통신사 뱃길 여정을 기록한 전우홍 씨의 항로 일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그는 “실제 조선통신사처럼 연안을 따라가는 뱃길은 호수나 강을 항해하는 것처럼 눈 시리게 아름다웠다”고 했다. “이번에 눈부신 통신사 뱃길을 한일을 연결하는 관광 우호의 항로로 정례화해야 한다는 꿈을 다졌어요.” 그는 “통신사 인원 중 대부분 부산 사람들로 추정되는 150여 명 규모는 오사카에 3~4개월 머물렀는데 그들이 그 기간 어떻게 생활했는지 추적하기 위해 일본 자료를 구해왔다”고 했다. 그는 이번 여정을 기록한 노트 한 권을 보여주며 통신사 길의 실제 거리를 구체적으로 산정해낼 거라고 했다.

그는 “200여 년 역사에 기반해 새 역사로 나아가고 있는 통신사의 길에 젊은 사람들이 더욱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며 “거기에 분명 한일의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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