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중증 ‘입소 거부’는 일상… “이사까지 다녀요”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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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보호시설 ‘돌봄 부담’ 퇴거 요청
학생 위주 서비스… 성인은 가족 몫
부산대 특수교육과 연구팀 설문
보호자 27% “시설 선택권 제한”
시설종사자 48% “직원 수 부족”

26일 오후 부산 수영구의 한 장애인주간보호시설에서 동화구연과 종이접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26일 오후 부산 수영구의 한 장애인주간보호시설에서 동화구연과 종이접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의 장애인시설 부족으로 성인 중증장애인이 시설 이용을 거부당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정부의 지원 서비스는 장애인이 학생일 때 집중되고 성인이 되면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인이 돼 무거워져 가는 자녀를 돌보는 부모는 하루하루 지쳐가고, 정상적인 생활이 무너진 가정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다.

■갈 곳 잃은 최중증장애인

부산 부산진구에서 지적장애 1급 성인 아들(26)과 함께 사는 한성화(54) 씨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3번이나 주간보호시설 입소를 거부당했다. 시설에서 중증장애인을 돌보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시설에 겨우 입소해도 보름도 채 되지 않아 ‘돌봄이 부담된다’며 나가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코로나 이후 한 씨의 아들에게는 원인 없는 구토가 심해졌고 외부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생겼다. 결국 대책으로 낮 시간 활동 욕구를 달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이용 가능한 서비스를 신청해 이용 중이다. 하지만 주간보호시설과 달리 지원이 열악해 차량 이동과 아들의 점심 식사 준비는 모두 한 씨의 몫이다. 출근해야 하는 한 씨는 경제 활동을 중단하고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 씨는 “주간보호시설을 만든 취지는 장애인에게 낮 시간 돌봄을 지원하고 가족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인데 정작 입소 거부가 일상이다. 주간보호시설 한 곳에 들어가기 위해 주변의 장애인 부모들은 이사까지 다니는 실정”이라며 “입소에 성공하더라도 작고 협소한 시설에 장애인들이 밀집해 있는 등 열악한 상황이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대 특수교육과 연구팀이 부산의 장애인 보호자, 시설 종사자 4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소규모 장애인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보호자들은 이유로 ‘중증장애 특성으로 인한 시설의 입소 제한’을 1위(26.9%)로 꼽았다. 중증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가 시설 선택권과 결정권을 제한받는 상황이다.

■한 명만 빠져도 아비규환

반면 장애인시설 종사자들은 시설 포화와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중증장애인을 추가로 더 돌보기는 어렵다고 호소한다. 실제 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근무 중인 시설의 문제점을 물었을 때 ‘이용자 수에 비해 직원의 수 부족’이 1위(48.5%)로 꼽혔다.

종사자들은 시설이 포화돼 종사자 한 명이 다수의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업무 부담이 커 중증장애인을 추가로 돌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수영구의 한 장애인주간보호시설 관계자는 “14명이 이용하는 이 시설의 종사자는 3명에 불과하다. 종사자 1명이 장애인 5명을 돌본다”며 “코로나 이전에도 입소 대기자가 40명에 이를 만큼 수요가 많은 상황이었다. 지금도 이미 종사자 1명당 장애인 3명을 권장한 보건복지부의 기준을 현저히 초과한 포화 상태여서 더 많은 인원을 받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남구의 한 장애인주간보호시설 관계자는 “종사자 3명이 이용자 12명을 돌본다. 중증 인원도 많아 어려움을 겪는다”며 “시설 이용자가 뇌전증으로 쓰러지는 등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종사자 한 명이 교육이나 휴가를 가는 경우 시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상태가 된다”고 밝혔다.

일선에선 시설 종사자를 늘리는 것이 최중증장애인 보호자의 돌봄 부담과 시설 종사자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양성수 부산시장애인주간보호시설협회장은 “시설 종사자도 다수의 최중증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대기할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을 안타까워하지만 현실적으로 더 많은 인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설 종사자를 늘리거나 시설 자체를 더 많이 개설하는 등 지역사회의 돌봄 기능이 강화돼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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