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리가 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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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우리가 남이가?”

1980년대쯤, 영남지역에서 유행했던 구호였었다. 지금은 지역감정을 부추겨 영호남 관계를 악화시켰던 대표적인 말로 회자한다. 그 당시 정치인들의 의도적인 선동 탓도 있지만, 대중의 내면에 ‘우리’라는 정서가 얼마나 깊게 배어있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라는 단어는 아주 재미있다. 쓰임새부터가 그렇다. 이 단어를 종종 ‘나’라는 의미로 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 엄마’ ‘우리 땐 안 그랬어’ 하는 식으로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음에도 ‘우리’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붙인다.

단어의 문법적 활용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그 쓰임이 아주 절묘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라는 단어를 말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살펴보자. ‘나’는 어디까지가 ‘나’일까? 내 몸뚱이가 ‘나’라고 한다면, 내 몸 속에 같이 사는 미생물이나 바이러스도 ‘나’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모두 얼굴을 찌푸릴지 모른다.

사실, 몸 안에 상주하는 미생물이 없다면 사람은 정상적으로 살기 어렵다. 장 속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들은 저마다의 생존 방식을 갖고 있다. 어떤 미생물은 인체에 도움을 주고, 어떤 미생물은 기척도 없이 산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인체를 벗어나면 생존할 수 없다. 그들의 역할이 어떻든 나는 그들을 인식조차 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몸 안의 미생물이 꺼림칙하다면 나를 구성하는 세포는 어떤가?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 속엔 다양한 소기관이 있지만, 그중에 핵심적인 소기관으로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이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적인 원핵생물이었다고 한다. 대략 20억 년 전쯤, 이 원핵생물은 우연히 다른 세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른다. 잡아먹혔지만 소화되지 않아 살아남았을지 모르고, 그냥 무작정 세포 안으로 파고 들어갔을 수도 있다.

아무튼, 미토콘드리아는 새로운 세포와 한 몸처럼 생활하면서 ATP라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그 대신 영양분과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다. 미토콘드리아를 몸에 품은 세포는 진핵생물, 고등생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우군을 얻게 되었다. 그러니 사람의 몸을 세포 단위로 살펴봐도 ‘우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우겨댈 근거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 폐 속을 들락거리는 공기, 체액을 구성하는 물, 매일 먹는 음식의 구성 원소들을 섭취하는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나타난 원소를 섭취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원소들의 일부는 분명히 다른 생명체의 일부였었다. 마주 보며 대화하던 친구가 내뱉은 공기가 내 폐 속으로 들어와 내 몸의 일부가 되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의 눈물이 물 분자가 되어 내가 들이마시게 된다.

우린 모두가 타인과 만나고 부대낀다. 그리고 같은 공기를 호흡한다. 그러니 나는 내 주위의 또 다른 ‘나’와 끊임없이 서로를 교환하고 있는 셈이다. 대화로 각각의 생각을 교환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서로의 몸 전체를 뒤섞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라고 구분 지을 경계가 모호해지고 오히려 ‘우리’라는 단어가 더 선명해진다. 더불어 오래 함께 산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새삼스럽겠지만,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 보겠다.

“우리가 남이가?”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게 섞인 이 질문에 씌워진 오명을 벗겨 내보자. 얼마나 심오한 질문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추석 귀성길에 꽉 막힌 차량들을 보며 문뜩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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