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료 공백 오죽하면 환자들 폭염에 거리로 나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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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 서울서 대규모 집회 가져
의료계 신속히 집단휴진 철회해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의사 집단휴진 철회와 재발방지법 제정을 촉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의사 집단휴진 철회와 재발방지법 제정을 촉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환자들이 불볕더위 속에서도 거리로 나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는 4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열고, 의료계와 정부를 향해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환자와 보호자, 일반 시민 등 수백 명이 참석했다. 환자단체들이 이렇게 대규모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그동안 환자단체들은 주로 정부나 정치권 인사들과의 간담회나 기자회견을 통해 의견을 밝혀왔다. 환자와 가족들이 폭염 속에서도 거리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환자단체들이 이번에 직접 거리에 나선 것은 지난 5월 말 법원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각하 결정을 내리고, 정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한 상황에서 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단체들은 이날 의료계를 향해 진료 정상화를 요구했고, 국회를 향해 의료계 집단행동 재발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환자 보호자는 “딸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나와 이별하게 될까 봐 내일이 오는 것이 무섭다. 의정 갈등에 환자들의 생명이 볼모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생명을 볼모로 집단휴진 중인 의료계에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단체들은 이날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정부를 탓해야지 왜 의사들을 탓하냐’며 날을 세웠고, 정부는 의대 증원 찬성 여론을 앞세워 환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공의들을 밀어붙였다”며 의사 집단과 정부 모두를 비판했다. 환자단체들은 2014년과 2020년의 의사 집단행동 때에도 대규모 집회를 열지 않았다. 그동안 의사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집단행동을 주저했던 것이다. 환자들은 전공의들의 이탈에서 시작된 의료 공백 사태를 어떻게든 버티며 사태 해결에 기대를 걸어왔다. 하지만 그 기대는 낙담이 돼 돌아왔다. 의사 집단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오죽하면 몸이 아픈 환자들까지 거리로 나섰겠는가.

의사에게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은 의사의 부모도, 의사협회도 아닌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환자들이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고 있다. 의료계가 진정으로 환자의 생명을 존중한다면, 즉시 집단휴진을 철회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이것이 환자를 살리면서 의정 갈등의 실타래를 푸는 해법이다. 환자단체가 지적했듯이, 의정 갈등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는 의료계와 진정성 있게 소통하며 사태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복귀할 명분을 제공할 방안을 더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환자들의 생명이 더 이상 의정 갈등의 볼모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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