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어질어질…더운 날씨 탓 방치하단 큰일 납니다
온열질환
열탈진 방치하면 열사병으로 진행
헛소리·바싹 마른 피부 ‘응급 상황’
야외 활동 ‘물, 그늘, 휴식’ 기억을
‘아아’로만 수분 보충하다간 ‘탈수’
부산부민병원 응급실(심장혈관흉부외과) 김병훈 과장은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분들은 ‘물, 그늘, 휴식’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한다”라며 “동료끼리 서로 안색이 어떤지, 땀은 잘 흘리고 있는지를 확인해 주는 것이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부산부민병원 제공
지난 5월 15일부터 6월 21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347명에 달한다.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를 통해 집계된 결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56명보다 91명이 많다. 매년 갱신되는 ‘역대급 폭염’에 온열질환 예방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높은 기온 외 습도·바람도 ‘문제’
온열질환은 더위로 인해 몸의 체온 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부산부민병원 응급실(심장혈관흉부외과) 김병훈 과장은 “몸이 버틸 수 있는 ‘열’의 한계를 넘었을 때 체온 조절 시스템이 고장 나서 생기는 병”이라며 “보통 기온이 높은 것만 생각하는데, 습도와 바람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습도가 높으면 땀이 증발하지 않아서 체온이 안 떨어진다. 또 꽉 막힌 비닐하우스나 한낮의 공사장, 에어컨을 끈 밀폐된 차 안 같이 바람이 없는 곳에 장시간 노출될 때 온열질환 발생 위험이 크다.
열사병은 생명이 오가는 초응급 상황으로 온열질환 중 가장 위험하다. 더위를 먹은 것과의 가장 큰 차이는 ‘의식’과 ‘땀’이다. 김 과장은 “체온 조절 중추가 아예 망가져 몸이 펄펄 끓는데도 땀조차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체온이 40도를 넘고, 환자는 헛소리하거나 의식을 잃는다. 김 과장은 “바로 119를 불러야 한다”라며 “환자를 그늘로 옮기고 겉옷을 벗긴 뒤 찬물이나 얼음으로 몸을 빨리 식혀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열탈진은 흔히 말하는 ‘더위를 먹은’ 증상이다. 열사병과 반대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몸이 열을 빼내는 것으로 얼굴이 창백해지고,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고, 기운이 없다. 열탈진은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 수분을 보충하면 상태가 좋아진다. 김 과장은 “문제는 이런 증상을 무시하고 계속 일하거나 뙤약볕 아래에 있을 때 생긴다”라고 말했다. 쏟아지던 땀이 멎으면서 피부가 뽀송하고 뜨거워지며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하면 열탈진이 열사병으로 넘어가는 ‘아주 위험한 순간’이다.
땀을 흘린 뒤 갈증이 난다고 물만 마시면 몸속 염분 농도가 떨어져 종아리·허벅지·배 쪽에 심하게 쥐가 난다. 이것이 열경련으로, 그늘에서 쉬며 스포츠음료나 소금물로 전해질을 채워주고 뭉친 근육을 마사지하면 상태가 호전된다.
열부종은 더운 곳에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때 발생한다. 몸이 열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혈관을 확장하고, 늘어난 혈관을 타고 피가 아래로 쏠리면 발이나 발목이 붓는다. 김 과장은 “열부종 자체만으로는 응급실까지 올 필요는 없다”라며 “시원한 곳에 누워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올리고 쉬면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라고 전했다.
더운 날 갑자기 일어서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핑 돌면서 쓰러지는 것이 열실신이다. 열을 식히기 위해 피가 피부 쪽에 몰려 있을 때 갑자기 움직이면 뇌로 가는 피가 일시적으로 부족해져서 어지럼증이 생긴다. 김 과장은 “열실신 환자는 시원하고 평평한 곳에 눕히고 다리만 위로 올려주면 금방 의식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폭염은 자연재난…젊다고 방심 ‘NO’
생명이 위험한 열사병의 징후는 크게 두 가지다. ‘이상한 행동이나 헛소리를 하는 의식의 변화’와 ‘몸은 불덩이인데 땀이 전혀 나지 않는 건조한 피부’이다. 더위를 먹고 쓰러진 사람을 불렀는데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피부가 바싹 말라 있다면 응급 상황이다.
김 과장은 “일이나 운동을 하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거나,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거나, 몸이 축 처지면 그 즉시 하던 것을 멈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원한 그늘에서 쉬면서 물을 마셨는데도 1시간 이상 증상이 가라앉지 않거나 오히려 심해질 때, 구역질이 심해서 물도 삼킬 수 없는 상태라면 바로 응급실에 가야 한다.
응급실에서는 온열환자의 피와 소변 검사로 몸속 전해질 균형이 얼마나 깨졌는지, 근육이 녹아내리지는 않았는지, 신장이나 간 손상은 없는지 등을 확인한다. 김 과장은 “차가운 수액을 주사하고, 몸에 물을 뿌린 후 선풍기 바람을 쐬거나 얼음으로 체온을 떨어뜨린다”라고 말했다. 더위로 체온이 올랐을 때 해열제는 소용이 없다. 김 과장은 “약물보다는 올라간 체온을 물리적으로 식히는 치료가 핵심”이라고 전했다.
덥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찬 맥주를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탈수를 부른다. 카페인과 알코올이 강한 이뇨 작용을 해서 몸속 수분을 밖으로 더 끌어내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커피나 술은 마신 양보다 더 많은 소변을 보게 만든다”라며 “땀을 많이 흘렸을 때 몸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은 맹물이나 전해질이 든 이온 음료이다”라고 덧붙였다.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햇빛이 강한 한낮에는 야외 활동을 피해야 한다. 굳이 나가야 한다면 바람이 잘 통하는, 헐렁하고 밝은 색 옷을 입고 모자나 양산으로 직사광선을 막아야 한다. 바깥 현장에서 일할 때는 ‘물, 그늘, 휴식’을 기억해야 한다. 김 과장은 “15분, 20분 간격으로 수시로 물을 마시고, 오후 2~5시 사이에는 잠시라도 무리한 작업을 멈추고 그늘에서 쉬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또 동료끼리 서로 안색이 어떤지, 땀을 잘 흘리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온열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여름에는 고령자, 어린이, 만성질환자, 거동 불편자 등 온열질환 취약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고령자는 노화로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져 있으며 갈증을 잘 못 느껴 탈수가 일어날 수 있다. 어린이는 열을 빨리 흡수하는 데 비해 땀샘은 덜 발달해서 어른보다 더 빨리 더위를 먹는다. 김 과장은 한여름에 운동하다 응급실에 실려 오는 20~30대를 꽤 많이 본다고 했다. 그는 “젊고 평소에 운동도 많이 하니 더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큰 착각”이라며 “폭염은 정신력이나 튼튼한 체력으로 극복하는 대상이 아닌, 자연 재난이기에 안전하게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