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하야리아 경마장의 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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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인권위원

하야리아부대는 1945년 9월 16일 미군 부대가 부산진구 범전동 일대의 일본군 주둔지 지휘를 인수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곳은 사행성 경마장과 더불어 일본군 군용지가 있었다. 이곳에 주둔한 미군은 자신들의 고국인 미국 플로리다주 유명 경마장 이름인 하야리아(Hialeah)를 본따 부대의 이름을 지었다.

전국의 많은 기지촌이 그러하였듯 하야리아부대 근처에도 성매매집결지가 조성되었고, 이곳의 집결지는 ‘범전동 300번지’로 불렸다. 미군 PX에서 흘러나오는 물품을 파는 암시장과 더불어, 범전동 성매매집결지는 여성의 몸을 경유한 돈으로 말미암은 지역 경제의 거점 역할을 했다. 사실상 미군 및 군속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기능하였던 이곳에는 미군에 의한 성매매여성 살해 및 성폭력이 횡행하였으며, 지역 사회에서는 그런 미군을 상대하는 성매매여성을 비하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 주한미군 감축 및 기지 이동이 발표되면서, 부산 지역 운동 단체들은 1993년 11월 29일 ‘부산 땅 하야리아 되찾기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2002년 3월 27일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 체결로 하야리아부대 부지의 반환이 결정되었고, 2004년부터 하야리아부지 시민공원추진 범시민운동본부가 결성되어 부대 부지의 시민공원 전환이 추진되었다. 이윽고 2006년 8월 10일 하야리아부대가 공식 폐쇄되었고, 그로부터 5년 뒤인 2011년 8월 11일 공원 조성 기공식이 개최되었으며, 2014년 5월 1일 마침내 해당 부지가 부산시민공원으로 탈바꿈되어 오늘에 이른다.

부산시민공원이 하야리아부대이던 1990년대 초, 당시 부산·경남 지역의 초등학생들이 자주 소풍을 가던 곳 중 하나가 성지곡수원지였고, 그곳은 공교롭게도 하야리아부대 입구와 지근거리에 있었다. 소풍가방을 멘 초등학생들 중 몇몇이 부대 앞을 지나다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국군 초병을 보고는, 미동도 않는 저 사람이 과연 인형인지 진짜 사람인지 궁금해하며 위병소 앞으로 달려들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초병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고, 아이들이 가까이 올수록 그의 얼굴은 시나브로 공포로 물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일을 겪더라도 전방 주시와 우경계총 자세를 바꾸어서는 안된다는 군기와 으름장이 그 초병을 거기까지 내몬 셈이었다. 아이들이 다가올수록 초병의 표정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전방을 주시한 채 새하얗게 경직되었고, 종내엔 정말 인형처럼 온몸이 굳어 보였다. 현역 복무와 예비군과 민방위를 모두 끝낸 지금도 가끔 그 초병의 얼굴이 생각난다. 병역의 의무를 치르기 한참 전, 군인이 땅의 주인이던 시절의 사회가 사람의 몸을 어떻게 굳혀 놓는지를 그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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