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해방은 여성에게도 왔는가 - 나혜석과 미완의 광복
나혜석, 자화상, 1928년 추정, 소장처: 수원시립미술관.
어두운 배경 속 한 여성이 앉아 있다. 눈은 관람객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화면 밖 어딘가를 향한다. 오른쪽 어깨는 아래로 약간 처져 있고, 얼굴에서도 오른쪽 눈이 미세하게 내려앉아 있다. 나혜석의 ‘자화상’이다. 좌우가 어긋난 눈과 기울어진 얼굴, 각진 윤곽에서는 자연주의적 재현에서 벗어난 입체파와 표현주의적 변형이 연상된다. 본격적인 입체주의나 표현주의 작품은 아니지만, 외형의 닮음보다 내면의 긴장과 정신을 드러내려는 근대적 표현 의지는 분명하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관습적 여성 초상과 달리, 나혜석은 자신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기운 어깨와 비껴간 눈빛은 내면의 불안과 상처를 드러낸다. 여기서 얼굴은 외모를 기록하는 표면이 아니라 시대와 충돌한 정신이 나타나는 장소다.
1896년 태어난 나혜석은 화가이자 소설가, 여행가이며 여성운동가였다. 일본 도쿄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의 새로움은 ‘최초’라는 수식어에만 있지 않다. 그는 여성을 아내나 어머니가 아니라, 생각하고 욕망하며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독립된 인간으로 보았다.
1918년의 소설 ‘경희’에서도 주인공은 결혼과 순종을 요구하는 현실에 맞서 교육과 노동, 자립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자각은 당시에는 가부장적 질서를 뒤흔드는 선언이었다. 나혜석에게 글쓰기와 그림은 분리되지 않았다. 글이 여성에게 강요된 제도와 윤리를 비판하는 무기였다면, 회화는 여성이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시화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예술보다 사생활에 더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 이혼 이후 나혜석은 1934년 〈삼천리〉에 발표한 ‘이혼고백서’에서 남성 중심의 정조 관념과 결혼 제도의 위선을 비판했다. 남성의 외도에는 관대하면서 왜 여성에게만 순결과 희생을 요구하는가? 사회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그를 조롱하고 추방했다. 사람들은 화가와 작가 나혜석보다 ‘이혼한 여자’를 먼저 보았다.
나혜석의 삶에서 1945년 광복은 온전한 해방을 뜻하지 않았다. 민족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여성은 여전히 가부장제와 성적 이중 규범 속에 묶여 있었고, 국가는 해방되었으나 여성의 삶은 해방되지 않았다. 그는 광복 3년 뒤인 1948년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나혜석의 ‘자화상’을 다시 바라본다. 관람객과 마주치지 않는 눈, 한쪽으로 처진 어깨와 비대칭의 얼굴은 한 시대를 견뎌낸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자신을 억압한 세계 너머의 삶을 바라보려는 의지도 남아 있다. 외형의 아름다움보다 상처 입은 내면을 그린 그의 자화상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모두 해방되었는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