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앤피플] ‘만능통장’ 기존 혜택 유지·생산적금융 경쟁력에 무게
국내 증시 자금 유도 위한 개편안 논란
계약 만기·이월 제한에 ‘투자자 불만’
업계, 정책 공감 속 선택권 축소 우려
이 대통령까지 나서 전면 재검토 지시
구윤철(가운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 세제 개편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 대표적 ‘만능통장’으로 자리 잡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며 정부가 결국 발표 일주일여 만에 제도 개편 방향을 다시 손질할 전망이다. 국내 증시로 장기 투자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생산적금융 ISA’를 신설하며 투자 대상을 한정한 것과 장기 절세 기능을 축소해 복리 효과가 줄어든 것을 두고 투자자의 선택권이 침해 받았다는 비판의 여론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 ISA 혜택은 최대한 유지하며 ‘생산적금융 ISA’도 투자자에 유리한 구조로 개편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능통장 혜택 축소
ISA는 하나의 계좌에서 예·적금과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국내 주식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면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일명 ‘만능통장’으로 불린다. 2016년 도입 당시 3조 4000억 원 수준이었던 가입금액은 2021년 12조 9000억 원으로 10조 원을 넘어섰고 올해 1월 말 기준 54조 7000억 원까지 불어났다. 특히 국내 상장 해외지수 ETF 등을 장기간 적립식으로 투자하려는 청년층과 사회초년생에게 대표적인 절세 수단으로 인기가 높다.
논란의 시작은 정부가 국내 증시로 자금을 유도하기 위해 생산적금융 ISA를 신설하면서 기존 ISA의 운용 방식까지 동시에 손질하기로 하면서다. 정부안에 따르면 기존 일반 ISA는 최소 3년인 의무 가입 기간 이후 사실상 제한 없이 연장할 수 있던 계약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했다. 연간 2000만 원의 납입한도를 채우지 못할 경우 남은 한도를 다음 해로 넘길 수 있었던 ‘납입한도 이월’도 폐지했다.
반면 새롭게 도입되는 생산적금융 ISA에는 이자·배당소득 전액 비과세와 총 2억 원의 납입한도, 최대 10년의 투자기간 등 기존 ISA보다 큰 혜택을 부여한다. 투자 대상은 국내 상장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으로 제한했다. 국내 증시에 상장돼 있더라도 미국 S&P500이나 나스닥100 등을 추종하는 해외 주식형 ETF는 투자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국내 자본시장으로 장기 투자자금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년 등 개인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방향은 달랐다. 생산적금융 ISA의 혜택을 늘리는 것과 별개로 기존 ISA의 운용 조건을 불리하게 바꾼 것을 두고 먼저 반발이 튀어나왔다.
■“선택권도 제한”…투자자 반발
특히 장기간 ISA에서 해외지수 ETF를 적립해온 투자자의 반발이 거세다. 국내 상장 해외지수 ETF는 일반 계좌에서 투자할 경우 매매차익에 대해 배당소득세가 부과되지만 ISA에서는 손익통산과 비과세, 저율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반형은 200만 원, 서민·농어민형은 400만 원까지 비과세되고 이를 초과한 금액에는 9.9%의 분리과세가 적용된다. 여기에 기존에는 의무 가입 기간이 지난 뒤 만기를 계속 연장할 수 있어 계좌 안에서 발생한 이익에 대한 세금 정산을 뒤로 미루면서 장기적인 과세이연과 복리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실제 일부 투자자들은 ISA 만기를 수십 년 뒤로 설정해 S&P500이나 나스닥100 등 장기 우상향을 기대하는 해외지수 ETF를 적립하는 방식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정부안대로 계약기간이 최대 5년으로 제한되면 5년마다 계좌를 정리해 세금을 정산하고 다시 가입해야 한다.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연속성과 과세이연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다만 개편안이 확정되더라도 기존에 99년 등 장기로 만기를 설정해 놓은 가입자에게 계약기간 제한이 소급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납입한도 이월 폐지 역시 투자자들의 주요 불만이다. 현재는 연간 2000만 원의 한도를 모두 채우지 못하면 남은 금액을 다음 해로 넘길 수 있다. 올해 1500만 원만 납입했다면 내년에는 기본 한도 2000만 원에 미사용분 500만 원을 더해 2500만 원까지 넣을 수 있는 식이다. 이는 매년 일정 금액을 저축하기 어려운 사회초년생이나 자영업자에게 특히 유용한 측면이 컸다. 소득이 적을 때는 납입액을 줄였다가 성과급 등 목돈이나 여유 자금이 생겼을 때 미사용 한도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월 제도가 폐지되면 그해 사용하지 않은 한도가 사라져 소득 변동성이 큰 가입자일수록 불리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청년층이나 자영업자 등 소득 변동성이 큰 가입자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생산적금융 ISA에만 ‘혜택’을 주는 동시에 기존 ISA의 운용 조건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해외 투자자금을 국내 증시로 돌리려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국내 투자의 매력을 높여 자금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도록 하기보다 기존 혜택을 줄이는 이른바 선택권의 제한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해당 개편안이 최근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진 가운데 나온 만큼 투자자들의 불만이 보다 강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통령까지 제동…혜택 원상복구 유력
논란이 정치권까지 번지자 결국 이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 참모들이 참석한 상황점검 회의에서 ISA 개편안과 관련한 투자자들의 반대 의견을 보고 받고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도 입법예고 기간에 제기된 의견과 대통령 및 정치권의 지적을 반영해 보완 여부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민 의견까지 수렴해 제도 보완 필요성 등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당에서도 기존 ISA를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ISA를 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거론되는 방안은 기존 ISA의 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생산적금융 ISA를 별도로 추가하는 방식이다. 우선 기존 ISA의 계약기간을 지금처럼 사실상 제한 없이 유지할지, 납입한도 이월을 그대로 허용하는 등 이른바 ‘원상복구’가 유력하다. 생산적금융 ISA 역시 납입한도 이월을 허용하고 만기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부의 재검토 움직임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국내 증시로 장기 투자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위해 기존 투자자의 선택권을 줄이는 것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세제 혜택만으로 해외로 향한 투자자금을 국내 증시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는 세금뿐 아니라 기대수익률과 시장 전망, 투자 대상의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처를 결정한다는 점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자에 추가적인 혜택을 주는 것과 기존 ISA 가입자의 선택지를 줄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기존 ISA의 장점과 운용 유연성은 유지하고 생산적금융 ISA만의 확실한 경쟁력을 만들어 투자자가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 세제개편안의 입법예고는 오는 20일까지 진행된다. 이후 당정 조율과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국내 증시 활성화’와 ‘투자자 선택권’ 사이에서 논란이 불거진 ISA 개편안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거쳐 어떤 모습으로 수정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