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민주주의, 그게 다 뭐랍니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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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

검열 폐지 표현의 자유로 한국 영화 발전
12·3 내란 계엄 성공했다면 나락행 불 보듯
부마민주항쟁 헌법 전문 수록 무산 아쉬워
이 대통령 의지, 개헌 논의 재점화 이어지길

영화 호프, 스파이더맨, 오디세이를 차례로 봤다. 영화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피서지로 극장만 한 곳이 없어서였다. 참고삼아 한 줄 평을 하자면 스파이더맨은 이 나이에 볼 영화는 아니었다. 오디세이는 인간은 다들 힘들게 사는 존재라는 생각에 괜히 짠했다. 호프는 누가 뭐라든 간에 재밌었다. 한국에서 이런 SF영화까지 나온다는 게 뿌듯했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지만, 직접 보고 나서 평가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문득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12·3 내란이 성공했으면 한국 영화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한국 영화는 1990년대 중반 헌법재판소의 사전심의 위헌 결정으로 검열 제도가 폐지되고, 표현의 자유를 얻은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였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철저한 사전 검열이 이루어져 정치 비판, 사회 고발물, 부조리한 공권력을 다룬 작품은 제작이 금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누적 관객 1312만 명이 든 ‘서울의 봄’ 같은 영화 제작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12·12군사반란을 다룬 ‘서울의 봄’이 인기를 끌자, 당시 국방부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국방부는 2023년 12월 12일 “과거와 같은 군사 반란은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한 가운데, 국민의 힘으로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며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한 소임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일 년도 못 되어 12·3 내란이 났다. 계엄의 성공은 한국 영화까지 나락으로 보냈을 게 뻔했다. 기억에서 희미해진 부마민주항쟁 이야기를 하고 싶다. 10·26 사건과 12·12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이 모두 부마에서 비롯됐다. 부마민주항쟁은 4·19 혁명 정신을 이어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으로 연결하는 민주화 대장정의 큰 역할을 했지만, 오랫동안 다른 민주화운동보다 조명받지 못해 안타까웠다.

올해 들어 반갑게도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부산대에서 선언문을 작성해서 뿌리는 등 학내 시위를 주도한 정광민 부마민주항쟁사업회 이사장은 〈열흘의 혁명〉을 통해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 30명은 역사적 의미에 비해 문학적 재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부마민주항쟁을 시집 〈아직 다 말해지지 않은 목소리들〉을 내고 기렸다. 여기에 최근 철학자 김용옥까지 〈도올이 본 부마 시민혁명〉을 내놓으며 가세했다. 도올은 부마항쟁을 우리 역사 최초의 근대적 시민혁명이라고 정의 내린 뒤, 직접 부산과 마산의 격전지를 찾아다니고 있다.

이 글의 제목 ‘민주주의, 그게 다 뭐랍니까’는 이번 부마민주항쟁 기림시집에 참여한 김곳 시인이 쓴 시의 제목에서 가져왔다. 김 시인은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다가 갖은 고문을 받았던 한 구술자의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떤 심정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지 짐작이 된다. 이 시집에서 두 명의 시인이 기리고 있는 서회인 씨 이야기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서 씨는 동주여상 야간부 2학년에 다니다 중구 대청동 인근 육교에서 경찰이 쏜 소형 최루탄인 사과탄 파편에 얼굴을 맞았다. 그 뒤 오랫동안 폐질환을 앓다 서른아홉에 유명을 달리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재명 정부는 지난 5월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등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으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불참하면서 투표 불성립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들은 충분한 여야 합의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 없이 급하게 처리되는 졸속 개헌이라고 비판했다. 이러니 스타벅스의 ‘탱크 데이’ 나 이진숙 의원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토론회를 국회에서 여는 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남의 상처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되고, 모든 주장이 학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5·18이나 부마를 강성 보수 주도권 싸움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

현행 헌법은 1972년 유신헌법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박탈했던 제5공화국 헌법에 맞서 6월 항쟁을 통해 온 국민이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면서 나왔다. 1987년에 만들어졌으니 벌써 4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이 낡은 헌법 곳곳에 도사린 허점을 윤석열이 불법 계엄을 자행하는 데 악용한 바 있다. 주관적 판단에 따라 정치적 위기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목적 등 자의적으로 비상계엄을 확장 해석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개헌 의지 재천명이 활발한 개헌 논의 재점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영화 보고, 별 걱정 없이 글을 쓰는 것도 다 민주주의 덕분이다.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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